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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신 포도'가 때론 행복이다

엘리 노웰은 명문 옥스퍼드 대학에 불합격 통지서를 '보냈다'. 받은 것이 아니다. 면접을 본 엘리는 "귀 대학은 내가 고려하는 대학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통보했다. 입학 지원서 사정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옥스퍼드를 탈락시킨 이유는 "엘리트주의와 차별의 간극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중대한 결함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소수계, 중산층, 공립학교 출신 지원자에게 불리한 갖가지 입학 사정 절차를 들며 "이는 진정한 학습 잠재력을 왜곡한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옥스퍼드 대학 의례에 맞춰 "입학 지원 철회를 알려드리게 돼 유감이다.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귀 대학은 내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위로했다.

많은 아이들이 대학입학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을 때다. 원하는 대학에 가느냐 마느냐의 직전이다. 사실 넓게 보면 우리 모두는 인생의 합격, 불합격을 논할 수 없다. 그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의 대기자 명단에 있다. 어느 때나 '직전'은 희망과 불안, 후회 등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인생 초반에 10전 10승의 삶을 산 사람도 있다. 하지만 보통 사람에게 승리란 골 득실을 따져야 하고, 때론 경우의 수도 따져봐야 한다.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일상에서 가장 갈등을 겪는 순간이다. 과음하거나 날씨가 서늘하면 얼큰한 짬뽕이 생각난다. 그런데 막상 서너 젓가락 먹다 보면, 옆 자리의 달콤한 짜장면이 아쉽다. 며칠이 지난 후 그 아쉬움을 채우고자 메뉴를 뒤바꿔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짬짜면'이 나왔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불과 몇 년 만에 종적을 감추기 시작했다. 이유는 후회가 안 남기 때문이다. 짜장면(짬뽕)을 시키면 '짬뽕(짜장면)을 시킬 걸' 하는 후회가 있어야 다시 중국집을 찾게 되는데, 두 개를 동시에 다 먹게 되다 보니 무덤덤해지는 것이다. 결국, 중국집을 찾는 빈도가 적어진다. 양손에 떡을 쥐면 '앉아있게' 마련이다. 후회는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다.

목표는 여러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후회를 전제로 해야, 목표는 존재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목표를 정하고 후회 없이 살겠다(해보겠다)'는 사실 틀린 말이다.



후회는 뒷걸음이 아닌 변화의 서막이다. 후회가 있어야 삶의 모든 행위에 의미가 있다. 후회해야 '내가 뭘 잊고 살았나'를 알 수 있다. 삶의 족적과 자아를 제대로 성찰할 수 있다.

달고 맛있는 포도를 딸 때가 행복인가. 저 포도는 시다며 점프를 포기할 때가 행복인가. 사람들 대부분은 '포도밭의 여우(이솝우화)'다. 아무리 뛰어올라 손을 뻗쳐도 닿지 않으면 모든 게 '신 포도'다. 어찌 보면 신 포도는 후회의 대체 상징물이고, 인류를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다. 많은 이는 행복이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따라오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맞다.

하지만 포도밭의 여우도 마냥 불행하진 않다. 때론 행복을 따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을 포기할 때 행복이 온다. 더 행복해지려면 더 많은 것을 얻어야 하는 건 아니다. 일부를 버려야 한다. 행복은 욕망이나 쾌락과 달라서, 행복해지는 일 자체가 엄청난 재능이다.

오랫동안 말기환자 간병 일을 했던 간호사 브로니 웨어에 따르면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겐 공통된 후회가 있다. 남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인생이 아닌, 나 자신에게 솔직한 인생을 살지 못했다는 것과 자신의 기분을 내키는 대로 표현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는 것. 특히 자신을 좀 더 행복하게 하는 데(얻거나 버리거나) 노력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19살 엘리는 이미 인생 막바지 후회를 넘어선 듯하다. 삶의 통찰력이 대단했거나, 포도밭의 여우였다. 옥스퍼드보다 행복에 합격했다.


김석하 논설위원 kim.sukha@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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