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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시간은 '고무줄'이다

지난 일요일 밤 12시. 유튜브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2004년 ALCS 4차전'으로 들어갔다. 그해 월드시리즈 바로 전단계(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경기다.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혈투. 7전 4선승 경기서 이미 양키스는 3-0으로 앞서 있다. 이날 4차전서 3-4로 지고 있던 레드삭스, 9회 말 극적인 동점을 만들더니 연장 12회서 끝내기 홈런을 쳐냈다.

"내일은 월요일, 이제 자야 하는데… 에이 하나만 더 보자." 5차전은 한 술 더 떴다. 이번엔 연장 14회에서 5-4로 레드삭스 또 승리. 이쯤 되면 6, 7차전을 안 볼 수 없다. 결과를 다 알고 있는 일인데도 새롭다. 14년 전 그날 일로 14년 후 새벽 3시에 숨을 헐떡일 줄이야.

시간은 어떤 때는 짧게, 어떤 때는 길게 느껴진다. 물리적 '시간 지각(知覺)'이 '마음의 시간'에 의해 왜곡되기 때문이다. 과거의 일이 아주 더 먼 과거에 일어났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도 하다. 이렇듯 마음의 시간은 고무줄처럼 엄청난 탄력성을 갖는다. 즐거움과 행복감에는 빨라진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느려진다. 당시의 감정, 몰입, 집중도가 시간 지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빨리 가는 느낌이 든다. 특히 지난 10년은 더 빨리 지나간 것 같고, 실제 발생 시간보다 더 최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에 비해 그 앞의 수십 년은 길게 지속된 듯, 실제보다 더 오래전에 일어난 듯하다.



"그때라도 시작할 걸." 문득 젊음이 가버렸다고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훗날 되돌아보며 젊음이 떠난 건 훨씬 나중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안타까워한다.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노인이란, 언제나 나보다 열다섯 살 더 많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호기심이 가득 차야 시간은 더디게 간다. 아이나 젊은 날의 시간을 생각해보면 굉장히 더디게 갔다. 난생 처음 겪는 일도 많고, 온갖 것이 새롭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니 시간이 길게 간다. 새로운 사건이 많으면 같은 시간도 길게 느끼는데, 없으면 아주 짧게 느낀다. 결국 시간의 흐름은 '호기심'의 축적인 셈이다.

중장년, 노년층이 바라는 것은 '안정(安定ㆍstability)'이다. 바뀌어 달라지지 아니하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 하지만 그런 상태의 문제는 시간이 '짧게' 간다는 것이다. '오래' 살고 싶은 바람과 상충하는 것이다.

우리는 백세 시대 운운하면서 육신의 건강을 길게 늘이는 데 몰두하지만, 정작 마음의 시간을 길게 늘이는 데는 무관심하다. 사실은, 재미있게 오래 살자고 육체의 건강을 도모하는 것인데 거꾸로 됐다. 그렇다고 처음 경험하는 여러 가지 새로운 일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젊음의 시간처럼) 것을 바라는 노년도 없다. 딜레마.

한 편에선 시간이 무료하게 점점 더 빨리 간다고 불안해하고, 다른 편에선 느닷없이 처음 겪는 일이 자꾸 생겨서 불안해하는 딱 중간에 우리의 삶이 놓여있다.

시간은 '스타카토'로 끊어내 반죽을 하고, 그 속에 한 알씩의 경험과 의미, 재미, 후회라는 씨를 담아둬야 한다. 그게 풍성하게 자라 꽃을 맺는 순간, 시간의 지배자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빠르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느리다. 무언가로 행복해 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빠르다. 무언가로 슬퍼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길다. '고무줄'인 시간을 당신은 어떻게 튀길 것인가.

나이 드는 게 비극적인 이유는 사실 우리가 젊기 때문이다.


김석하 논설위원 kim.sukha@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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