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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고] 땅속이 불안하다

지난주 발생한 서울 동작구 상도동 유치원 붕괴 사고는 수많은 시민들을 놀라게 했다. 처참하게 부서진 유치원 건물은 120여 명의 아이들이 다니던 곳이었다. 하마터면 세월호와 같은 대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금천구 가산동 오피스텔 공사장 흙막이 벽체 붕괴 사고로 주민 200여 명이 긴급 대피한 지 불과 1주일 만이다.

상도동 유치원은 이미 6개월 전에 전문가 안전진단 결과 붕괴 위험이 예측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관할구청은 사고 하루 전날에도 건물 기울어짐 현상을 통보받았다고 하니, 붕괴 사고는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도 '싱크홀'이란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싱크홀(Sinkhole)이란 땅의 지반이 내려앉아 지면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는 땅 꺼짐 현상이다. 주로 석회암 지역의 지하 암석이 용해되며 발생하는 현상이지만, 한국에서 발생한 싱크홀의 대다수는 인재에 의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특히 대형 굴착공사가 많은 서울의 경우, 노후된 상하수도 파이프 누수 등이 겹치면서 크고 작은 싱크홀이 발생한 것이다.

상도동 유치원 붕괴사고와 가산동 흙막이 벽체 붕괴사고는 싱크홀은 아니지만, 지반이 붕괴되면서 땅이 꺼진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하인리히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어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밝힌 법칙이다. 가령 산업재해가 발생해 중상자가 1명 나오면,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부상을 당할뻔한 사람들이 300명이 있었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수많은 대형사고들을 돌이켜보면 상당 부분 공감이 간다.

상도 유치원 붕괴사고도 마찬가지다. 유치원 측은 이미 지난 5월부터 구청과 교육청에 안전진단 예산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사고 발생 전날에도 유치원 측은 건물의 기둥 균열 및 기울기 발생을 감지하고 공사 중단 및 시급한 안전 진단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했음에도 담당 공무원의 안일한 대처에 이번에도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뒤늦게 국토교통부는 상도동 붕괴사고와 관련해 인근 공동주택 공사 중지를 명령하고, 전국의 유사 공사현장에 대한 주변 안전관리실태 긴급점검을 지시했다. 좀 더 일찍 이런 조처를 했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미국의 경우 모든 공사 현장은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한국처럼 현장에 '안전제일'이란 구호를 크게 써 붙여놓지는 않지만, 모든 공정이 철저한 안전관리 시스템에 의해서 돌아간다. 조금이라도 위험 발생 요소가 감지될 시에는 담당 공무원이 언제든지 공사를 중지시키고 문제를 해결한다.

공사가 지연되어 추가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안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승인이 나질 않는다. 공기 단축으로 비용을 절감하기보다는 안전하게 공사를 마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시공 과정에서 엔지니어가 설계한 공법이 아닌 다른 공법으로 변경이 필요한 경우에는 엔지니어 및 담당 공무원의 철저한 심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상도 유치원 붕괴 원인인 흙막이 공사의 공법이 당초 설계된 CIP 공법에서 보다 저렴한 락볼트 숏크리트 공법으로 변경되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공법을 변경했다면 이유는 단 하나, 비용 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법 변경과 관련하여 당초 튼튼한 CIP 공법으로 설계했던 엔지니어의 최종 승인이 있었는지, 담당 구청의 자체적 승인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시공 과정에서 공법 변경 시에는 보다 철저한 심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나 이번 사고처럼 지반 붕괴가 가능한 도심지 흙막이 공사의 경우에는 더욱 민감하게 접근해야 한다. 혹시나 발생 가능한 문제점들에 대해서 미국처럼 엔지니어의 철저한 검토 및 최종 승인이 있어야 한다.

안전불감증에 걸려버린 대한민국, 땅속이 불안하다. 미국과 같은 철저한 안전관리 시스템의 도입으로 더 이상의 붕괴 사고는 막을 수 있길 희망해 본다.


이진태 / 지반공학박사·워싱턴주 환경부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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