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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좋은 죽음

경험할 수 있지만, 경험했다고 말하지 못한다. 만추(晩秋)의 계절, 툭 하고 떨어지는 찰나를 본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낙엽에서 죽음의 잔상을 본다. 삶의 끝은 묵직하겠거니 생각했지만, 의외로 가볍다. 소설가 서머셋 모옴은 불경스럽게도 "(사람이) 개가 죽는 것과 똑같이 죽는다"라고까지 했다. 그러면서 "내가 생각하는 인간은 흔하고 평범해서 영생이라는 거대한 실상엔 걸맞지 않게 느껴진다. 불멸의 개념은 그토록 협소한 구조에 던져진 존재들이 감당하기엔 너무도 광막하다. 나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그들의 정신이 영원히 살 것임을 암시하는 어떤 징후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 말이 맞건 틀린 건, 죽음 그리고 이후는 우리의 소관이 아니다. 우리의 실질적 마지막은 그 무렵이다.

인간에게 '좋은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한국인은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을 좋은 죽음의 첫 번째로 꼽았다. 서울의대 윤영호 교수팀은 환자, 가족, 의사와 일반인 각각 약 1000명씩 총 4176명을 대상으로 좋은 죽음을 설문한 결과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비록 '부담이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은 빠져 있지만, 환자와 일반인은 '가족에게 부담주지 않는 것'을 첫째로 꼽았고 가족들은 '가족이나 의미 있는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선택했다. 많은 환자들이 삶의 끝에 고통을 겪지만, 한국에서는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본의 경우는 '신체적·정신적 편안함' '희망하는 곳에서 임종'을 우선 순위로 꼽았다.

서구에서는 '고통으로부터의 자유'가 무엇보다 우선됐다. 미국은 '통증으로부터 해방' '영적인 안녕 상태'를 중요시했고, 영국은 '익숙한 환경에서' '존엄과 존경을 유지한 채' 등을 좋은 죽음으로 정의했다. 이런 차이점은 죽음에 대한 가치가 문화적 영향을 받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의 정서를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 미국 시스템에서 사는 한인 고령층의 경우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한국인 눈으로 보면 미국에서 죽음 직전의 삶은 가장 고립되고 외롭다. 선진국의 양로 시스템이 훌륭한 것은 어찌 보면 "이제는 죽음과 맞닥뜨리세요. 자식이나 친인척들의 경제활동을 방해하진 말아야죠. 우리가 잘 치료할게요"라며 일반 사회와의 단절을 외치는 것 같다. 병원방문 시간도 한국에 비해 매우 제한적이다. 그들에게 좋은 죽음 1순위는 '통증으로부터 해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좋은 죽음으로 생각하는, 가족에게 부담(시간을 빼앗거나 병원비 등으로 고생하거나)을 주지 않는 것은 해결된 것 아닌가.

"진짜 그런가?" 내게 물었다. 당신에게 묻는다. "진짜 그게 좋은가?"

한국 정서는 이중적이고 반어적이다. 경계선은 모호하다. 가족에 부담주지 않겠다는 의미는, 오히려 '관계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갈망이다. 결국, 미국에서 한국인으로 죽음을 맞는 것은 '내 몸과 옷이 따로 노는' 상황이다. 달리 말하면 "잘 모실게요"와 "잘 치료할게요"의 차이다.

이번 조사가 한국인에게 정작 중요한 부분은, 어쨌거나 좋은 죽음이 가족과 밀접한 관계 있다는 것이다. 설문 조사에서 보듯 떠나는 사람은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하고, 보내는 사람은 떠날 때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결론적으로 답은 똑같은 셈이다.

인간은 네 부류다. 믿음이 있어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 믿음이 없어도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 믿음이 있어도 죽음이 두려운 사람. 죽음이 두려운데 믿음도 없는 사람.

죽음은 운명처럼 무감각하고 예민하지 않다. 다만 죽음을 맞이하는 자의 마지막 흐릿한 모습은 가족이어야 한다.

우리는 살고, 우리는 죽고, 우리는 기억되고, 우리는 잊힌다.


김석하 논설위원 kim.sukha@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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