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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멕시코 국경 장벽과 만리장성

#. 지난 연말 뉴멕시코 일대를 여행했다. 12월 22일부터 시작된 연방정부 셧다운 바람에 벼르고 별렀던 계획이 뒤죽박죽이 됐다. 텐트락스, 밴들리어, 화이트샌즈 등 여러 준국립공원(National Monument)과 박물관들이 문을 닫아 헛걸음하거나 아예 방문을 포기했다. 텍사스주 접경 칼스배드 동굴 국립공원과 텍사스주 최고봉 과달루페마운틴 국립공원도 입구만 훑고 왔다.

셧다운이란 예산 처리가 되지 않아서 연방정부 주요부서 업무가 일시 정지되는 상황을 말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공공 안전에 직결되는 업무는 계속 된다고는 했다. 하지만 연방공무원 38만 명은 무급휴가 상태로 전환되고 42만 명은 급여를 받지 않는 상태로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일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불편과 피해는 나같은 국민들 몫이 됐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는 이번 셧다운으로 미국 경제가 매주 12억 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 1970년대 이후 연방정부 셧다운은 이번이 21번째다. 평균 2년에 한 번 꼴이니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번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사상 최장의 사태이고, 공화 민주 양당이 계속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이다. 사태의 직접 발단은 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 문제다. 장벽 건설을 비롯한 멕시코 국경 경비 강화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었다. 이에 반해 민주당은 국민 세금으로 장벽 세우는 것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쪽 캐나다 국경과 달리 남서부 멕시코 국경은 미국의 고민거리이긴 하다. 국경 인접 도시들은 히스패닉 인구가 80~90%에 이르는 곳이 수두룩하다. 그들은 미국 문화에 동화되지 않는다. 스패니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유지하면서 강력한 흡인력으로 중남미 불법 이민자들까지 끌어 모은다.



이민자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백인 중심 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미국 보수 세력이 충분히 위기감을 가질 만한 대목이다. 더구나 중부 사막 국경 너머엔 멕시코 정부조차 통제력을 잃어버린 마약상과 무장집단들이 활개를 친다. 미국 안보에도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중남부 백인 보수층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경 장벽 설치에 집착하는 이유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과 벽은 이민족을 막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특히 중국은 2500여년 전부터 장벽을 쌓았다. 춘추전국시대 진(秦), 조(趙), 연(燕) 등이 북방 유목민족을 방어하기 위해 장성을 쌓기 시작했고 이후에도 시황제, 한(漢) 무제를 거쳐 17세기 명(明) 말기까지 장성 수축과 중수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쌓은 성이 만 리나 된다 해서 만리장성이 됐다.

하지만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쏟아 부어 쌓은 장성도 결정적 순간에는 무용지물이었다. 4세기 5호16국, 10세기 5대10국 등 혼란기 때마다 이민족에게 뚫렸고 13세기 송(宋) 때도 여진족 금(金)에게 뚫렸다. 이후 남송은 장성을 넘어온 몽골족에게 무릎을 꿇었고 사실상 지금의 만리장성인 17세기 명대(明代) 장성도 만주족으로부터 명나라를 끝까지 지켜주진 못했다.

인위적인 경계선은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무너지고 만다. 만리장성을 넘어 중원을 제패했던 청(淸)의 걸출한 황제 강희제는 이런 말을 남겼다. "진이 장성을 축조한 이래, 한-당-송 역시 항상 수리를 하였는데 그렇다고 변방으로부터의 환란이 없지 않았다. 오직 덕을 쌓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만이 국토 수호의 방법이다. 백성의 마음이 기쁘면 나라의 근본을 얻게 될 것이니 변경도 저절로 굳건하게 될 것이다."

만리장성은 중국의 상징이 됐지만 원래 목적은 사라지고 오직 관광 유람지로서만 기능할 뿐이다. 그게 부러워서라면 모를까 다른 이유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 장벽 건설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미 자유의 여신상 같은 훌륭한 상징물이 있고 가 볼만한 관광지도 널렸는데 무슨 또 다른 게 필요할까. 오직 중남미 불법 이민자를 막는 것이 목적이라면 방법은 장벽 말고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이종호 논설실장 lee.jong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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