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저는 아프기만…나머진 하나님이 다 하십니다"

롱아일랜드 나소카운티 한국요양원 지나 김 대표
기적의 순간 목도하며 '시한부 선고' 벗어나
폐암이 뇌로 전이, 죽을 고비 수 차례 넘겨
"다시 태어난 인생, 모든 일에 최선 다할 뿐"

한국요양원 박영표 목사(왼쪽)가 한 한인 노인에게 안수하고 있다.

한국요양원 박영표 목사(왼쪽)가 한 한인 노인에게 안수하고 있다.

"저는 아프기만 하면 돼요. 그리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그 나머진, 생사화복의 절대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하시니까요."

폐암과 뇌암으로 죽을 고비를 몇 번씩이나 넘기고 난 지금의 삶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자 덤이어서 감사하다는 한국요양원 지나 김 대표의 말이다.

2012년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후 의사로부터 3주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받은 그녀지만 지금 8년째 의사들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영육간의 강건한 삶을 유지하고 있다.

한 달도 아니고 고작 3주 후면 내 삶이 끝난다는데, 갑자기 머리속은 맑아지고 생각이 더없이 투명해졌다. 그리곤 곧바로 이러한 기도가 나왔다.



"앞으로 남은 3주가 100년을 잘사는 삶으로 살아가게 해 주시고, 죽음까지도 감사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세요."

이런 기도를 하고 난 후 그녀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평화와 평강을 체험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그때부터 내 삶의 주관자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란 사실이 그냥 믿어졌다.

암 환자들에 있어 재발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다. 그런 그에게 그간 두 번의 재발이 있었다. 늘 그랬듯 그때마다 그녀는 아주 가까이에서 죽음과 독대했다. 처절한 순간이다.

그러던 지난해 말 폐암이 뇌로 전이됐다. 이번엔 상황이 좀 심각했다. 종양이 발견된 뇌의 미세한 신경세포 하나만 잘못 건드려도 전신마비 또는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한 번의 사선을 넘어섰다. 어려운 뇌 수술이 다시 한 번 성공한 것이다.

암 전문의들 사이에서 그녀는 요즘 연구 대상이자 기적이 치료한 환자로 소문 났다. 과학이 증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역을 집도의들도 체험한 것이다. 집도의들에 따르면 두 번이나 암이 재발됐고, 이런 종류의 폐암 환자가 치유되고 8년째 생존한 경우는 지금까지 기록에 단 한번도 없었다.

김 대표는 "당시 두 딸들이 의사의 소견을 듣고 신앙적으로 큰 변화를 겪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어머니에게서 기적의 순간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말씀 안에 견고하게 서 있으면 삶 속에서 이렇게 창수가 나고 죽음이 꿈처럼 찾아올 때 결코 요동치 않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말씀이 되신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그 어떤 순간도 함께하신다는 확신은 그 참담하고 형용하기 어려운 힘든 순간에서도 단 한번의 원망과 절망이 없게 투명한 이 순간까지 붙드심 속에 있게 하셨습니다."

화려했던 예술가의 길 접고 신앙인으로

그는 1959년 3남 3녀의 막내로 태어났다다. 어릴 때부터 활달한 성격에 학창 시절 반장, 회장, 규율반장, 걸스카웃 대장 등을 맡으며 리더십 또한 뛰어났다.

1976년 뉴욕으로 이민 와 이듬해 줄리어드 음대 성악과에 수석 입학했다. 이후 유럽 벨지움 왕립음악학교에 입학, 성악을 전공했다. 졸업 후 성악보다 음악기획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유럽 유학 당시 플루트 연주가 장 피에르 랑팔과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인 에휴디 메뉴인 등 전설적인 음악 거장들과 인연을 맺게 됐고, 이들을 한국 무대에 세우게 된 것이 인연이 돼 공연기획가의 길을 걸었다.

한인 최초로 '프로아트 이벤트, 킴 인터내셔널 아트 메니지먼트사'를 설립했고,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미국과 한국 등 주요 무대에 세웠다. 이후 그는 컬럼비아(Columbia), ICM, IMG 등 세계 굴지의 매니지먼트사와 국제 계약을 맺고 초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세계적인 음악가와 만날 기회가 많았던 그는 음악 매거진에 커버스토리를 쓰고 음악 칼럼을 게재해 성공적인 음악 저널리스트로도 맹활약을 떨쳤다. 그야말로 세속적으로 너무도 잘 나가던 그녀였다.

맨해튼서 1년간 노방 전도, 요양원 설립

이렇게 세계적인 명사들을 만나면서 화려하게 살던 그녀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인 어느 날, 집을 나서면서 만난 백인 거지를 통해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게 된다.

하루는 현관 문을 열고 외출하려는데 한 허름한 차림의 백인 거지가 집 바로 앞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를 본 그녀는 대뜸 "오늘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취해 가신다면 당신은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돼 있으신가요"라고 묻는다. 김씨는 자신이 그때 왜 이 말을 했는지 모른다며 홈리스를 보는 순간, 그냥 이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백인 거지가 이렇게 말했다. "당연하지요. 그렇고 말고요"라고. 순간, 그녀는 머리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후부터 삶은 180도 바뀌게 된다. 이제 더 이상 화려함은 없다. 그녀는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거리로 나선다. 그렇게 1년간 맨해튼 일대를 돌며 거리의 노숙자, 알콜 중독자, 에이즈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한 손엔 성경을, 또 다른 손에는 빵과 음식을 들고서. 음악을 전공한 후배들과 함께 찬양 팀을 구성해 양로원과 병원, 데이케어 등지에서 찬양 사역도 했다.

그러다가 용커스 지역 한 너싱홈에서 중풍으로 온 몸이 비틀어진 백인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당시 이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면서 양로원 사역에 대한 생각이 불 일 듯 일어났다고 한다. 여생을 노인들을 위해 헌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지금의 한국요양원이 탄생한 것이다.

뉴욕 유니온데일 예루살렘애비뉴에 있는 한국요양원은 현재 한인 전문의와 간호사, 보조간호사들이 의료 및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한인 노인들을 위해 한인 요리사들이 상주하며 제공하는 맛있는 한식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요양원은 뉴욕주 공공보건부 산하 정부 요양기관으로 독립했다. 2개의 단독 빌딩에 300베드 규모의 한인 유닛이 있다. 75에이커의 넓은 부지에 자리한 요양원은 쾌적한 환경과 완벽한 시설을 자랑한다. 특히 나소카운티 대학병원과 공동 운영하는 재활 및 메디컬 프로그램은 정평이 나 있다. 메디케이드와 메디케어 소지자나 각종 장애 또는 질환을 앓고 있는 한인들은 누구나 입주할 수 있다.

요양원은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를 보답하기 위한 김 대표의 유일한 사랑 실천 창구다. 이곳에서는 매일 박영표 목사의 집도로 예배가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예배가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의 시작이다.

다시 태어난 인생으로, 영혼의 회복을 체험한 김 대표는 요양원을 향해, 아니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가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남고 싶어한다.


임은숙 기자 rim.eunsook@koreadailyny.com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