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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나그네의 추억

열 명 쯤이 양수리 다리 근처 강가에 자리를 잡았다. 텐트를 치고 이른 저녁을 준비하려 쌀과 야채를 꺼내는데 아뿔싸 간장 등의 조미료가 보이지 않는다. 근처에 가게도 민가도 없다.

멀리 군부대가 보여 무작정 찾아가 사정을 말하고 반찬 구걸을 했다. 한 그릇 된장을 주면 고맙겠는데 큰 삽으로 펐는지 머리통만 한 덩어리를 안겨준다. 한 달은 먹겠다. 야전군 병원인 듯했다. 군인들이 우리를 동생들로 생각해 푸짐히 주었으리라는 짐작이 간다.

텐트 자리를 만들 겸 굵은 자갈을 한 곳에 모아 밥상을 만들고 한 패는 땔 나무를 주워오는 등 모두가 바쁘다. 연기가 피어 오르고 깡통 꽁치찌게 냄새가 퍼지자 왁자그르르 모인다. 두 살쯤 더 ‘늙은’ 형이 몰래 감추어 온 소주병을 자랑스레 꺼낸다. 환성이 터진다. 강변이 떠나도록 해방된 민족이 된다. 한 쪽에서는 담배를 뻐끔거리기도 한다. 통하는 사람들끼리다.

역시 얘기의 중심은 여자다. 집적거리며 따라가는데 ‘들어오세요’하며 꽝 닫아버린 그 집 큰 대문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돌아선 일, 편지를 억지로 책가방에 꽂아주었는데 몇 달째 소식 없는 단발머리 새침데기의 무정함 등 엮여진 일보다 바람 맞은 일에 더 재미있어 한다. 내일 아침에는 물가로 나가 뜰채로 붕어와 피라미를 건져 올려 찌갯거리를 장만해 점심에 칼칼한 매운탕을 맛보리라.



다가온 어둠에 카바이드 등을 밝히는데 먹구름에 번개와 천둥이 치고 비가 억수로 퍼붓는다. 때리는 빗줄기가 텐트를 들었다 놨다 한다.

먼동이 트니 하늘이 푸르다. 언제 비가 왔냐다. 그러나 우리는 짐을 싸야 한다. 당장 아침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어젯밤 그 비 속에 먹거리를 모두 떠내려 보냈기 때문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이나 지루한 여름 나그네들이다.


지상문 / 파코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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