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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사는 이야기] 미국 트럭커의 사는 이야기

[시애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20/01/17 01:46

세 번째 이야기 - 미국에서 느낀 감정

사막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그 안에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우리에게 미국이 환상의 나라로 보이는 것은 그 안에 우리가 바라는 희망과 오아시스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보이고, 그렇기에 우리가 이민을 택했으리라 개인적 판단을 해 본다. 오래 전 이민을 오신 분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한국에서 올 때 오백불만 들고 왔다, 이백불만 들고 왔다 말하며 미국에 도착하여 온갖 고생, 수모 다 겪으면서 돈이 된다하면 마다하지 않고 일을 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하시는 분들이 많다.

처음엔 생계형 이민이 많았기에 그들의 고생 이야기를 함으로써 자기 위안과 함께 자랑스러운 자신의 모습에 대한 보상심리로 그들 스스로 긍지를 느끼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경제가 너무도 성장하여 예전같은 이민이 아니라 좀 더 나은 환경, 안정된 생활, 그리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미래지향적 이민이 많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초창기 이민 오신 분들이 하셨던 접시 닦기부터 밤 청소나, 구두수선 같은 일은 이젠 아예 하려고도 안한다. 지금 이민을 오려고 하는 분들의 수준이나 학력을 보면 거의가 중산층에 대학 졸업자이다. 거기다 한국서 아파트 한 채 팔아오면 몇 백만불 손에 들고 오는데 굳이 힘들게 육체노동에 시달리려고 하지 않아 그런 일은 이젠 한국 사람에겐 예전의 일로 사라져가고 있다. 나 또한 그런 부류의 한 사람으로써 미국 땅에 안착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미국에 살면서 느끼고 또 느꼈다. 미국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미국에 사는 한국 분들 모두가 잘 살고 TV에서 보는 것 처럼 보트타고 여유롭게 발코니에 앉아 커피 마시며 저녁엔 파티에 가고 하는 줄 알았다. 너무도 어리석은 기대였다.

사회복지를 하는 내가 왜 미국도 사람사는 사회이고 빈부격차가 있다고 생각을 못 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너무 큰 기대가 만들어 낸 환상이었을까? 아니다. 한국교육의 문제였다. 우리가 배울 때 미국사람은 검소하고 예의바르고 모든 게 좋다고 배워왔다. 어렸을 적, 한국서 “COMBAT(전투)”이라는 전쟁 미국드라마를 즐겨 보았던 기억이 난다. 2차 세계대전 미국과 독일군의 전쟁을 극화하여 방영하는 드라마였는데 주인공인 ‘리차드 킴벌’이라는 배우가 어린 마음엔 영웅이었고 미국군은 우리나라, 독일군은 나쁜 나라가 아니라 나쁜 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이 우리나라도 아니고 독일군도 나쁜 놈이 아니었다. 미국이 한국 전쟁 때 UN을 주도해 한국을 도와준 고마운 나라였기에 지나친 미국친화 교육이 맹목적으로 나를 미국을 찬양하는 어린아이로 만들었던 것 뿐이었다.

여기서 새벽 5시에 하이웨이를 나가보면 벌써 길이 복잡해진다. 모두가 그 시간에 바쁘게 일터로 나가는 것이다. 무척이나 부지런하게 보인다. 한국에서는 아직 모두가 잠들어 있을 시간 그제서야 밤새 흥청이던 술집이 문을 닫고 퇴근하는 시간에 미국은 술렁이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사람들이 일터에서 일하는 것 보면 실망이 앞선다. 난 그들의 일하는 모습에서 지금도 왜 미국이 이렇게 부강한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 한국 사람들은 노는 거 좋아하고 술 문화에 흥청망청하는 것 같아도 일터에 들어서면 눈이 반짝인다. 그런 반짝이는 눈이 지금의 한국을 만들었다고 난 생각한다. 미국 사람이 검소한 것은 빌이 쌓여 그렇게 안 하면 당장 힘든 시간이 닥쳐오기 때문이고 인사성 바른 것은 몸 부딪히고 사과 안 하면 총부리부터 들이대기 때문이며 신발을 신고 집안에 들어가는 것은 개척시대에 늘 긴장된 생활 속에서 온 관습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살아보니 미국이 보이고 이민 오신 분들의 생활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민을 오려고 결심을 한 후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 미국으로 이민을 오려고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 분들이 인터넷 안에서 주고받는 정보를 보면 동경과 환상이 대부분이다 사람은 누구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꿈을 안고 사는 게 당연하다. 어쩌면, 그런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더 발전적이고 바람직한 삶이 아닌가 생각도 한다. 그러나 너무 막연한 희망만 가슴에 담고 이민을 선택한다면 힘든 이민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을 모르는 것 같다. 나는 트럭 일을 선택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민 올 시기엔 지금처럼 YOUTUBE가 활성화 되어있지 않아 정보를 알 수 있는 체계도 없었고 이민 생활을 이렇게 정착했네 하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알리려 하는 사람도 없어 그 길을 찾아 홀로 서기를 하느라 많은 고생과 금전적 손해를 보았다.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사회복지 마인드가 이민 초기부터 살아 있었는지 용기를 내어 나의 이민 정착기를 글로 쓰기 시작하였다. 웹사이트를 개설하여 글을 쓰다 보니 조금씩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자신의 아픔을 털어 놓는 사람도 있었고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과정 속에 이민을 와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제대로 된 직업을 찾지 못 해 가정이 흔들리고 어렵게 사는 한국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특히 그들의 인식으로 직업의 귀천을 따져 그들 스스로 더욱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대학을 나왔는데 한국서는 내가 이런 직업을 가졌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해, 반면에 무언가 해 보고 싶은데 언어의 장벽 때문에 도저히 용기를 못 내는 사람도 많았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과 실전 영어가 부족하여 길을 선택 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여러 사람도 보았다. 아무것도 아닌 마음의 짐을 짊어지고 살면서 이민사회에서 낙후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이다.

꼭 번듯한 비즈니스를 해야 체면이 서고 좋은 차를 타야 품위가 있고 멋진 집에서 살아야 남 앞에 떳떳히 나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과시욕이 강한 사람들이 더러 있기도 했다. 나 또한 트럭 일을 선택하면서 마음의 갈등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다. 처음엔 창피하기도 하고 남 앞에 자신있게 트럭 일한다 말하는 것도 힘들었고, 특히나 한국서 넥타이에 양복만 입고 다니던 모습만 아이들에게 보여 주다가 작업복 차림에 기름때 묻은 옷으로 자식들 앞에 나서는 게 처음엔 왜 그리도 어색하고 마음이 무겁든지.... 시간이 흐르고 이 일로 인하여 자식들 대학보내고 결혼시키고 초라하지만 내 집을 마련해서 살다보니 지금은 이 직업이 자랑스럽고 떳떳하다.

사람은 하고자 하는 일이 잘 풀리면 뒤를 돌아보지 않지만 하고자 하는 일이 막히면 뒤를 돌아보게 되어있다. 헬렌켈러는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닫혀진 문을 너무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다른 문을 보지 못 한다”고 했다. 그렇다. 이민 생활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 한국에서 좋았던 생각, 잘 나갔던 생각에 잠겨있지 말고 빨리 툴툴 털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내가 한국에 미련을 버리고 트럭 일에 들어서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긴박한 이민 생활에 어쩔 수 없이 밀려 나간 것도 있지만 이 길은 나의 선택이였다. 그래서 난 오늘도 서투른 영어와 싸우며 미국 도로를 달린다. 짊어진 삶이 무거워도 해야 하기에 난 오늘도 한다. 다음엔 그런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필자 김종박 약력

중앙대 부속 중고 줄
육군 삼사관학교 18기
영주전문대 경찰행정 졸
동양대 사회복지과 졸
사회복지사
현) 코리아 시애틀 익스프레스 오너 및 오퍼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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