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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그레이 칼럼] 한국에서 온 좋은 손님들

몇 달 전 카톡을 하나 받았다. 한국에 사는 조카가 불쑥 보낸 카톡은 모처럼만에 보낸 인사가 아니라 비행기 표를 예약한 정보였다. 이곳에 사는 친척들의 형편이나 사정은 묻지 않고 미국에 사는 일가친척을 찾아온다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순간 “이런 맹랑한”생각이 들었지만 “그래 와라”답해줬다. 우리 8형제중에 유일하게 한국에 사는 언니의 큰아들인 조카는 미국을 여러번 다녀가서 이곳 사정을 대충 안다. 언젠가 찾아왔을 적에는 모두 일하며 바쁘게 사는 외가 식구들을 보고 안스럽다며 이민 와 사는 한인들이 한국에 사는 한인들 보다 고생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어머니를 모시고 사춘기 아이들 셋까지 온 가족 6명이 왔다. 구정이 낀 봄방학이라 했다.

원근에 흩어져 사는 친척들이 애틀랜타에 모였다. 흐리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지만 춥지않아서 좋다. 애틀랜타에 있는 동생의 큰 집은 만남의 장이며 동시에 휴양지다. 모처럼만에 모인 많은 가족으로 온 집안이 시끌벅적 한다. 워싱턴DC에서 내려온 큰딸네와 둘째딸네까지 동참해서 우리 부부에게는 고루고루 즐거운 시간이다. 특히 제일 어린 손주는 완전 인기다. 행복한 아이의 재롱은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준다. 3 세대의 가족들 중에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유심히 봤다. 결혼으로 가족이 된 이방인들이 능청스럽다. 강력한 인연이 즉석에서 묶어준다. 남북한이 통일되면 사돈의 팔촌보다 더 아득한 혈연을 찾아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우리 가족처럼 반갑게 사귈 것 같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6년이 되어간다. 가족의 중심이셨던 어머니를 잃고 적응하며 사는 형제들과 만나는 시간이 해마다 줄어든다. 더구나 제각기 아이들이 성장해서 결혼하면서 불어나는 식구들로 형제들 자신이 한 가족의 중심이 되면서 명절에 만나는 기회조차 드물다가 한국서 찾아온 조카네 덕분에 다시 가족 모임의 기회를 가진다. 동서양의 푸짐한 특별 음식들이 식탁을 채우고 영어와 한국어가 음악되어 출렁이는 분위기에 한국과 미국의 관점이 가볍게 나풀거린다.

미국과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2세 아이들의 교제나 그들과 구세대 어른들과의 대화가 단순하다. 습성이나 취향이 조금 다르고 언어소통이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서로 닮은꼴인 모습이지만 각자 사는 환경에 따라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 하지만 TV 화면에 슬쩍 비춰지는 겨울올림픽 게임처럼 흥미진진하다. 어른들은 흐릿한 추억에 한마디씩 보태서 텃밭을 만들고 아이들의 쫑알거림은 그 위에 내일의 꿈인 씨를 뿌린다. 한국어 방송에서 보여주는 북한 공연단의 모습을 보며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같은 민족임을 새삼 인식한다. 같은 문화와 전통에 같은 언어를 사용하니 얼마나 강력한 화합의 환경인가.



비록 올림픽이 세계인들의 스포츠장이지만 한반도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기회로 남북한이 서로의 손을 잡은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이념과 체제를 떠나 사람의 도리를 지키는 동방예의지국의 한민족으로 단합하여 살게 되는 내일을 소망한다. 한국전이 일어났던 환경과 완전히 다른 현시점에서 한반도의 일은 한국인들이 해결하도록 주변 나라나 강대국이 콩나라팥나라 하지않고 잠잠해 줬으면 좋겠다.

처음 미국을 방문한 조카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전세계를 무대로 배낭여행을 했다. 업고 안고 손을 잡은 어린아이들과 밥솥과 한식 양념과 라면박스를 들고 해마다 해외 곳곳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세상의 실체를 보여준 조카며느리는 대단한 여자다. 나보다 더 많은 동서양의 나라를 찾아본 아이들은 미국에 사는 처음 보는 다민족 친척들과 스스럼없다. 질문이 많고 매사에 적극적이다. 조카를 닮아 돌격적인 재치가 있고 머리 회전이 빠르다. 이들은 남북한이 통일되면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다.

글로벌 사회의 축소판같은 우리가족은 올해 한국에서 온 좋은 손님같은 친척들과 사순절의 시작과 발렌타이스 데이에 이어서 잃어버린 명절을 함께 즐기게 됐다. 모국의 명절인 구정의 풍습을 따르고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추모할 것이다. 혈연의 둘레 속에서 조카네가 가져온 옛날쌀엿가락을 늘리며 정을 쌓을 것이다. 이민 1세가 가족의 중심으로 건재하는 동안은 모국의 전통을 되살리지만 2세나 3세로 넘어가며 변화할 생활상이나 친척간의 다이내믹을 상상하니 흥미롭지만 허전하다. 나 떠난 후의 세상은 상상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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