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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내 몽블랑’

새 안경이 필요해서 검안사의 처방전을 들고 안경점 진열장 안을 두리번거릴 때 그는 나의 눈을 끌었다.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거울 속의 그와 나는 잘 어울려 보였다. 우선 안경테의 메탈 라인이 가늘어 가볍기도 하고 내 얼굴의 본모습을 크게 건드리지 않아서 좋았다. 동그란 디자인이 고풍스럽기도 했다. 이럴 때 하는 말이 천생연분이다. 꼭 맞는 안경을 찾기란 인생의 반쪽을 찾기처럼 어렵다고 한다. 예쁘다 싶으면 불편하고, 편하다 싶으면 디자인이 아쉽다. 새로 나온 고급품이라고 여주인이 호들갑을 떨었다. 고급이라는 말에 현혹될 일은 없지만 싫지는 않았다. 그 브랜드 이름이 몽블랑이다.

“여보 내 몽블랑 어때?” 그를 안경점에서 찾아온 날 그를 귀에 걸며 아내에게 물은 말이다. 처음 내 말을 못 알아듣고 멈칫하던 아내가 이내 “이 양반이 실없기는” 하며 피식 웃었다. 이따금 엉뚱한 말로 잠시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내 버릇이 재발한 것을 알아챈 것이다. 만년설이 쌓인 알프스산맥의 최고봉이라는 몽블랑. 중학교 때 그 산 이름을 처음 들었다. ‘흰 산’이라는 그 뜻보다 지리 선생님의 톡톡 튀는 발음이 무척 매력적이고 독특한 느낌으로 들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를 ‘내 안경’하는 대신 ‘내 몽블랑’이라고 부른다.

그는 늘 나와 함께 있다. 함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내 신체의 일부처럼 내 얼굴에 찰싹 붙어 다닌다. 비나 눈이 오거나 더운 날 그가 내 콧날 아래로 미끄러지는 일이 있다. 물론 자의는 아니다. 그럴 때마다 바싹 당겨 밀착시켜줘야 한다. 욕실에서 샤워할 때나 잠자리에 들 때는 부득불 그와 떨어져야 하지만, 나는 그가 내 손이 닿는 근처에 있는 것을 안다. 이중초점 렌즈(bifocal)가 장착된 그가 없이는 나는 눈뜬장님 신세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수도 없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도 상당한 위험부담이 따른다. 그가 없는 생활은 생각할 수 없다. 극히 드물게 있는 일이지만 어쩌다 그를 어디에 벗어놨는지 모르면 나는 패닉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의 위치 추적을 하는 데 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안내견을 잃은 시각 장애인 신세가 된다. 한번은 그를 찾느라고 야단법석을 치다 보니 그가 이마 위에 걸쳐있었다. 무슨 일로 그를 이마 위로 밀어 놓았는지는 기억에 없으나 코미디 속에나 나올 법한 해프닝이다.

내게 노안의 증상이 나타난 것이 40대 초반이니 그와 만나기 전에 여럿이 내 곁을 거쳐 갔다. 그러나 유독 그에게만은 정이 깊게 들었다. 로맨틱한 그 이름 몽블랑에 대한 첫사랑과 오랜 애착도 빼놓을 수 없지만 내 노안이 안정기에 들어 시력이 고정되었음인지 지난 8년간 그를 떠나보낼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그를 만나기 전엔 2~3년이 멀다 하고 새것으로 교체하던 일을 생각하면 그와 나와의 인연은 특별나다. 얼마 전 그의 장수(長壽) 이야기를 꺼냈더니 아내가 몽블랑의 산세가 좋아서 그렇단다. “꿈보다 해몽이 멋지네”. 빙긋 웃음을 띠며 나온 내 대답이다.



요새야 세상이 편하게 되어 안경으로 시력을 되찾거나 교정하는 일이 당연시되지만, 안경이 발명된 것은 겨우 800년이 채 안 된다고 한다. 안경 없는 생활을 상상해 보라. 안경은 ‘노년의 축복(a blessing to the aged)’이라는 말에 실감이 갈 것이다. 하지만 눈이 나쁘다고 누구나 안경을 쓰지는 않는다. 특히 여성 중에 외관상 미용적 측면에서 안경 쓰기를 거부하는 일이 많다. 외모지상주의의 포로가 된 경우다. “나는 시력이 터무니없이 나쁘다. 하지만 나는 인상파의 시각으로 사는 법을 체득했다. 인생은 모네 페인팅이다. 내 근시안으로 세상을 즐긴다 (I have ridiculously bad eyesight, but I have learned to live with an impressionistic view. Life is a Monet painting. I wander around enjoying myopia)”. 이런 그럴듯한 억지 변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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