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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개새끼

[애틀랜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8/31 15:38

올림픽이 LA에서 열린 해니 1984년이다. 생전에 올림픽을 구경하고 싶다는 부모님을 모시고 시카고에서 출발하여 LA로 자동차 왕복여행을 한 일이 있었다. LA에 체재하는 동안 선친께서 그곳에 이민 와서 사는 옛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하여 그 집에 모셔다 드렸다. 그분이 선친의 동갑내기 H씨다. 그는 1960년대 인천에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지였다. 박정희 정권의 언론 통제정책과 표적수사의 희생물이 되어 1975년 미국으로 이주했지만, 그는 인천 언론계의 거목이요 인천지역 문화 창달의 선구자였다. 다음은 내 선친으로부터 전해 들은 H씨 이야기다.

1950년대 말 H씨가 중학교 다니는 딸에게 가정교사를 붙여주기로 했다. 당시 인천의 명문 J고등학교 교장에게 부탁해서 S군을 소개받았다. S는 모범생이고 학교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리더였다. 시골 출신으로 가세가 넉넉지 못해 학교 다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 당시에는 ‘알바’라는 말 자체도 없었지만, 고등학생이 돈을 벌며 고학을 해서 학교를 다니기 어려운 시기였다. S는 H씨 집에 기거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가정 형편상 일반 대학으로 가기는 어려웠고 대신 학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관학교로 진학했다. 그리곤 4년이 지났다. 가정교사, 사관생도 시절, 그리고 임관을 거치면서 두 남녀는 사랑을 키웠고 임관 후에는 결혼으로 골인했다. 곧 H씨에게 손자까지 안겨 주었다.

장교 임관 후 군대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은 S는 1970년 미국 군사원조 자금으로 미국유학을 가는 행운도 잡았다. 오클라호마대학에서 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몇 년 만에 사위를 만난다는 기대에 한껏 부픈 H씨는 가족과 더불어 비행장에 나갔다. 그런데 출구를 나온 S는 느닷없이 가족들이 기다리고 서 있는 곳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그곳에는 그를 맞으러 온 또 한 그룹의 가족이 있었다. 예쁘장한 젊은 여자가 S를 맞으러 앞으로 내닫는 것이 보였다. 잠시 혼란에 빠졌던 H씨가 사태를 얼추 파악하게 되었다. H씨가 옆에 서 있던 6살 된 손자를 불렀다. “야, 너 저기 가서 네 애비보고 ‘야, 이 개새끼야’ 하고 와!”.
H씨는 곧 군 당국에 탄원서(축첩)를 제출했고, S는 이등병으로 강등되어 불명예 제대되었다고 한다. H씨가 딸과 손자를 데리고 미국으로 이주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여기까지가 내 선친이 생전에 들려주신 이야기다. 다음에 기술하는 것은 최근에 내가 수소문해서 얻은 정보를 모아 정리한 후일담이다. 극히 단편적이고 불완전하고 더러는 불확실하다.

S의 다른 여자(후처)의 가족은 서울의 유수한 사립대학교의 막후 실력자다. S는 그 후광으로 그 대학의 교수가 되고 교내 요직을 거쳐 승승장구 부총장에까지 오르게 된다. 정년 은퇴를 1년 앞두고 정부지시로 해직되었다는 인터넷 기사가 있었는데 그 이유가 공금유용이라고 했다. H씨는 2003년 작고할 때까지 캘리포니아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 마지막 몇 해 동안은 치매로 몹시 고생했다고 한다. S의 본부인 그리고 아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장성한 아들이 S를 만나겠다고 해서 부자간 재상봉이 이루어지고 S가 80세 생일을 근래 미국에 와서 아들과 같이 치렀다는 소문도 있는데 확인할 수 없었다. 물론 할아버지가 시킨 일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었지만, 비행장에서 제 아버지를 개새끼라고 했던 그 아들이다.

인생살이 한평생에 기복과 희로애락이야 누구나 겪게 되지만 S의 배신은 H씨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풀지 못하고 간 한 맺힌 응어리다. 그의 인생 말에 닥쳐 그를 괴롭힌 몹쓸 치매도 S의 배신과 연관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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