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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칼럼] 누가 효자를 만드는가

[애틀랜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9/03 15:27


인생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게 내 인생 철학이었다. 아이들을 기르면서도 가장 강조했던 것도 자립심이었다. 그런 탓에 나는 아이들이 대학 기숙사로 입주하고 난 후에는 애들 일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이사 첫날 짐을 옮겨 주고 돌아온 후 기숙사를 다시 방문한 일도 없었거니와, 학업은 잘 따라가는지, 무얼 먹고 어찌 입고 다니는지 졸업할 때까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장성한 후에도 나의 인생 철학은 변함없었다. 여전히 아이들의 직장이 어디인지, 돈은 얼마나 버는 건지, 어디서 사는지도 묻지 않고 지냈다. 본인이 직접 말하지 않으면 시시콜콜 묻지 않는 내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별다른 말썽 없이 잘 자라준 아이들의 영향이 더 컸다, 아이들도 나도 모두 각각 제가 속한 자리에서 제 몫의 인생을 잘 꾸려나갔고, 실제로도 행복했다.

이쯤 되면, 절벽에서 새끼를 던져 버리는 호랑이도 아니고 어떻게 어미로서 제 자식 일에 그리 무심할 수 있냐는 힐책을 들을 만하다. 맞다. 내 친구들의 표현대로라면 나는 정말 특이한 엄마다. 그러나 아이들이 집에 오는 날이면 마음이 설렜고,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날아갈 듯 기뻤다. 어떤 때는 내게 있는 것을 몽땅 퍼주고 싶은 마음을 절제하느라 입술을 앙다물었던 적도 있었으니, 여느 엄마들과 내가 무엇이 다를까.

지난해 겨울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헤어진 후 집에 돌아오는 데 갑자기 감정이 격해졌었다. 눈물이 핑 돌았고 외로움이 밀려왔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을 만나고 나면 마음이 서운했었다. 아들딸이 속마음을 터놓지 않으니 무시당하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자식에게 귀찮은 존재가 된 듯해서 서글펐다. 아이들 만나는 것이 점점 싫어졌지만, 그저 내가 늙는 과정이려니 하고 마음을 삭였다.

아침에 일터에 들어서니 기다렸다는 듯, 선이 할머니가 자기 방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저께 다른 주에 사는 따님이 잠시 다녀간 후 시무룩해 보여서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했었다. 밤새 울었는지 할머니 두 눈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 생각해 보니 딸이 떠날 때 할머니가 방 안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나는 왜 우리 딸이 점점 더 마음에 안 들까요?"
할머니의 볼멘소리에 문득, 지난해 겨울 눈물이 핑 돌았던 때가 떠올랐다. 선이 할머니도 바쁘다며 훌쩍 떠나는 자식의 모습에 마음이 서운했었구나. 장성한 자식과 나이든 부모 사이에 거리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릴 적 살갑던 아이들의 기억을 버리지 못하면 자녀의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서운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결국 마음마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식과의 감정싸움은 외로운 노후를 가장 힘들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올해 초에 나는 메신저에다 가족 대화방을 열었다. 우리 가족 네 명이 서로의 소식을 공유하는 곳이다. 내 젊은 시절 내 인생 철학을 빙자하여 무관심했던 게 마음에 걸려서 차마 직접 부탁할 수 없을 때, 내용을 써 보내면, 아이들이 금방 답글을 쓴다. 자식에게서 효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너무 좋아서 “뭐하니, 뭐 먹었니?”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묻지도 않는 내 일상까지 시시콜콜 써 댄다.

한자로 ‘효(孝)’라는 글자는 ‘늙을 노(?)“와 아들 자(子)’가 합쳐서 만들어진 문자다. 늙은 부모를 자식이 잘 받들어 모신다는 의미다. 그러니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자식이 아무리 물질과 정성, 온 마음을 바쳐서 받들려 해도 부모가 오해하고 등 돌려 버리면 이 세상에 그 누가 효자가 될 수 있으랴. 생각해 보라. 아이들을 세상에 오게 한 것이 부모였듯이, 자식을 효자로 만드는 것도 역시 부모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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