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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정자(精子) 구출 작전


어제 뉴욕타임스에 이런 기사가 있었다. 미국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생도 피터 주(Peter Zhu)가 학교 근처 슬로프에서 스키를 타다 의식 불명에 이르는 사고를 당했다. 담당 의사들이 뇌사 판정을 내렸고 피터 주가 사고 전에 장기기증에 서명했으므로 식물인간이 된 그의 장기를 적출할 단계였다. 그런데 그의 부모가 장기 적출 전에 피터의 정자를 적출해 달라는 소원을 법원에 제출해서 법원이 이를 허가했다는 것이다. 다른 장기를 잘라내기 전에 피터의 정자를 뽑아내서 정자은행에 보관시켜야 후에 그의 정자를 이용해 그의 후손을 생산하고 요절한 아들을 재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피터 주는 중국계 미국인이다. 올해 졸업을 앞두고 있던 우수한 사관생도였다. 그가 졸업반 생도 중에 손꼽히는 유능한 지도자였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의 부모들이 제출한 진정서에는 피터가 목장을 갖고 다섯 아이를 낳아 키우는 꿈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피터의 가족이 중국에서 이민 오기 전 중국의 산아제한정책인 ‘한 자녀 정책’ 때문에 피터의 세대에는 그가 주 씨 성을 이어갈 유일한 남성이라고 한다. 그가 죽으면 주 씨의 대가 끊긴다고 했고 피터의 정자를 적출함으로써 주 씨 가문의 성과 혈통을 이어갈 가능성을 남겨 놓겠다는 것이다.
피터 부모의 참척(慘慽)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중국 문화의 측면에서 남아를 통해 대대손손 가문을 보존해 간다는 전통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같은 유교 문화권인 한국에서도 성씨와 가문을 이어가기 위해서 남아를 선호하는 것은 다 아는 일이다.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난자와 정자를 체외(시험관)에서 인공수정시키고 자궁에 이식시키는 소위 시험관 아기가 가능한 시대가 아닌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남아를 통해 가문과 성씨를 전승시키는 비합리적이고 전 근대적인 구습에 얽매여 죽은 아들의 정자를 이용해 시험관 아기를 생산하겠다는 발상은 너무 맹랑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아들의 흔적을 보전하고 유지하려는 부모의 지극히 이기적인 욕망이라는 생각이다. 그들이 의도하는 바대로라면 난자 제공자도 찾아야 하고 대리모도 구해야 한다. 누구의 난자로 수정시킬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렇게 해서 출생한 아기는 낳을 때부터 부모가 없는 천애 고아일 확률이 높다. 아무리 조부모와 가족의 사랑이 크다 해도 부모 없이 자라는 어린아이의 처지와 이해(利害)는 안중에 없고 고려 대상에서 제외된 느낌이다.
영겁의 세월 속에서 인간의 한평생은 반짝하는 순간이다. 이 순간을 저세상에서 ‘소풍’ 나온 것이라고 해서 유명해진 시인이 있다. 많은 사람이 소풍 다녀가며 흔적을 남기려고 한다. 돈 많이 벌고 높은 관직에 오르고 유명인사가 되려는 것이 흔적을 남기려는 것이다. ‘아무개가 여기 있었노라’하고 싶은 것이다. 소풍 가며 길가 나무나 바위에 제 이름을 깎아 새겨놓는 일과 무어가 다른가. 인생이 유한하지 않다면 구태여 자신의 흔적에 연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물론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 자체가 흔적이요 자손을 남기는 것도 흔적이요 소풍을 끝내고 귀천하는 것도 흔적이다. 그러나 그 흔적은 곧 사라지게 된다. 억만년도 필요 없다. 수백 수천 년 안에 자취 없이 사라진다.
노자의 도덕경에 ‘선행무철적(善行無轍迹)’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한다. 잘 가는 사람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소풍 길에 티끌 같은 흔적도 남기지 말라고 한다. 흔적을 남기려는 마음은 집착이요 허망된 욕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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