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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순 칼럼] 친구야 또 한 번 멋지게 이륙해 봐!

이 세상 갑남을녀, 누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랴. 사람은 ‘낯선’ 것을 두려워하는 존재다. 본성이 그런즉 익숙함에 안주하고 변화 앞에서 몸을 사린다. 하물며 세월의 세례를 흠뻑 받은 중년이라면 변화 앞에서 더욱더 두렵고 떨리고 무섭다. 고국에 사는 절친은 군 소재지에서 십수 년이나 수학 학원을 운영하는데 새해 들어 새 일을 도모하고 있다. 주어진 업에 지고지순, 최선을 다하는 친구가 운영 중인 수학 학원은 지역에서 공부 좀 한다는 중, 고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러던 학원이 작년부터 시나브로 학생들이 줄어서 올여름 학원 문을 닫을 생각이라나.

원생이 줄어드는 원인을 분석해보니 요즘 젊은 부모들의 의식이 바뀌었단다. 무턱대고 너나없이 공부만 시키는 시대는 지났고 자식들이 공부에 관심이 없거나 특별한 끼가 있으면 일찍이 개성을 살려 원하는 분야로 방향을 튼다니 반갑고 바람직한 현상이다. 젊음을 송두리째 바친 인생 1막을 갈무리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를 수용, 새 일을 모색하고 있는 친구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살짝 내비쳤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자신이 물러날 때를 알고 적기에 은퇴하는 것이 가장 깨끗하고 아름답더라! 요즘 한 직장에서 인생을 마감하려고 고집하는 건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발상이야. 100세 시대, 1막을 깔끔하게 털고 제2막을 위해 또 한 번 이륙을 준비해봐! 너는 정말 잘할 거야…” 어쭙잖은 위로 몇 마디가 단박에 친구의 불안감을 잠재웠을까. 전화기 너머로 맞장구를 치며 곰곰 궁리 중인 인생 2막의 행로를 조곤조곤 풀어헤치는데, 일순 안도감이 스쳐 간다. 동병상련이라고, 기실 나도 젊은 날 고국에서 같은 일을 했던 터라 친구의 은퇴 소식에 가슴이 울컥했다. 대학 입학을 앞둔 고등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친구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입시경쟁이 치열해 이과 계열 대입 수능 문제를 하도 꼬아서 출제하는 바람에 수학에 능한 친구도 당해낼 재간이 없는지, 전화할 때마다 동네 도서관 구석에서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다니. 후유, 오십 넘은 갱년기에….

“우리 나이엔 머리 쓰는 일 그만둬야 해. 잘 됐어, 이참에 수학학원 접고 스트레스 도가니에서 쑥 빠져나와. 우린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리느라 우리 인생에 우리가 빠져 있었어. 너와 나처럼 중년에도 숨 막히게 일의 쳇바퀴를 돌리면 늙어서 통탄할 일이야. 아이들도 품을 떠났으니 삶이 아이들을 다듬어 줄 테고, 우리는 우리 인생을 따뜻하고 넉넉한 행복으로 채워가야 해. 안쓰러운 우리 자신을 어루만지면서!”



종종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의 삶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등골이 오싹해질 때가 있다. 인생이 허망하다고, 젊은 날엔 아이들 키우고 먹고 사느라 밤낮없이 허덕이고 조금 여유가 생기니 몸이 고장 나서 서글프다고, 지난 인생길을 돌아보면 회한뿐이라고, 여행도 다리 짱짱할 때 다니라니. 그뿐이랴, 대다수 사람이 직업적으로는 성공하지만, 인생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발을 동동 구른다나! 사실이다. 중년이야말로 지난 생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쇄신해 삶을 혁명할 타임이다. 인습적인 패러다임에 발목 잡혀 평생 한 가지 일에만 매달려 허랑허랑 금쪽같은 생을 허비할 때가 아니란 말이다. 인생의 전반기 밥벌이를 관통하던 일이 진저리난다면 숙성된 삶의 연륜과 경험을 밑천 삼아 중년에 걸맞은 일로 과감히 전향할 일이다.

지혜로운 친구는 100세 시대 이른 은퇴를 대비해 든든한 보험을 들어 두었다. 매일 이슥한 밤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갈피 짬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 놓았다. 그것이 인생 2막을 열어줄 효자라니, 멋지다. 실버타운에서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을 인생의 마지막 과업으로 꼬나쥐고 있다는 소리에, ‘세상에 똑똑한 사람은 많지만, 가치를 창출해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말이 머릿속에 두둥실 떠올랐다. 그렇다. 인생 2막은 머리를 쥐어짜며 스트레스받는 일에서 벗어나 주변에 온기를 퍼뜨리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이롭다. 늙고 병들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돌보며 내 미래를 추체험하는 일이야말로 진정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다.

인생 1막을 미련 없이 갈무리하고 삶의 외연을 넓혀 또 한 번의 이륙을 앞둔 친구와 통화하는 사이 내 가슴에 행복이 차올랐다. 지금, 이 순간 놓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새 일을 도모하는 친구가 황홀한 빛깔로 물들어가는 가을 나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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