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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봉의 미국에서 세자녀 키우기

위대한 조상 위대한 한국인

얼마 전 일이다. 아이들 한글학교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주제로 글짓기 공모전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장군의 탄생부터 성장 과정, 임진과 정유의 전쟁들, 거북선 등의 소재 중 하나를 택해 글을 쓰면 된단다. 그 몇 달 전 한글날 즈음에는 세종대왕의 위대함에 대해 글짓기를 한 적도 있다.

이런 행사가 있을 때마다 고민이 된다. 일반적인 통념대로 미화되거나 과장된 교육자료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지, 아니면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줘야 할지 말이다.

예를 들어 충무공의 어린 시절은 알려진 것과 달리 유복했으며, 거북선은 장군이 아니라 태종 때 이미 개발돼 실전 배치됐고, 승리의 주역은 거북선이 아니라 판옥선이라는 것 등이다.

세종대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훈민정음은 애초 글이 아니라 발음기호로 창제됐으며 고대 중국어에서 유래된 조선의 한자 발음을 당대의 북방계통 중국어 발음과 일치시키기 위한 것이다. 전임자 태종과는 달리 소수 지배층 양반 귀족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펼쳐 성군이라 칭송을 받았으나 실제로는 퇴행적인 정책이 많았고 업적도 크지 않다.



설사 위인들에 대한 자료가 모두 사실이라 하더라도 의문은 남는다. 훌륭한 조상이 있으면 후손들은 자동으로 뛰어나게 되는 걸까. 롤모델로서 배움에는 동의하지만 집단적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위인 교육은 좀 아닌 것 같다. 2차 세계대전 때 전체주의자들이 써먹던 폐쇄적 민족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은 다양한 나라 출신 다민족이 모여 만든 국가로 각국 각 민족마다 관련 교육시설이나 문화단체 등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아이들이 가는 한글학교도 그 중 하나며 한국문화원, 중국의 공자학원, 일본문화원, 독일문화원, 프랑스교육진흥원(Alliance Française) 등이 모두 그런 종류다. 내가 과문해서일지 모르나 그 중 위대한 조상을 자랑하며 그를 존경하고 본받자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 외에 보지 못했다.

그나마 중국은 정치적 목적 아래 민족주의를 고양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뿐 위인 숭배가 개개인의 무의식 속에 깊이 뿌리 박힌 것은 아니다. 가끔 학자들을 중심으로 그런 교육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기도 한다. 반면 한국은 그런 움직임이 전무하다시피 하고 심지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유가 뭘까.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깊게 뿌리 박힌 성리학적 효(孝) 사상 때문인가 싶다. 개인 단위에선 부모는 물론 어른을 공경해야 하며 집단으로서는 조상을 숭앙한다. 근대 민족주의와 결합한 효의 특징은 대략 다음과 같다. 한민족은 단군왕검 이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의 피를 이어받은 기마민족으로서 진취적 기상을 갖고 있다. 광개토대왕, 세종대왕, 이순신 등 훌륭한 조상을 본받고 전통과 고유의 문화를 소중히 하면 우리 모두 함께 잘 될 것이다.

과연 그런가. 불행히도 실제 역사는 우리 선조들의 전근대성을 낱낱이 드러낸다. 대표적인 것으로 노예제가 있다. 20세기초 일본에 의해 강제로 폐지되기 전까지 계속 유지된 야만적 제도다. 특히 조선에서는 노비에게서 얻은 친생자를 한쪽 부모가 양반이라도 면천하지 않고 다시 노비로 삼았다. 이 천자수모(賤者隨母), ‘천 것은 어머니를 따른다'는 법은 성군으로 칭송하는 세종이 노비 숫자를 늘리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제자식이나 배다른 형제, 친척을 노예로 부리는 건 동시대 중국이나 일본은 물론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현상이다.

번영과 발전은 뛰어난 조상과 전통이 아니라 기술과 사상, 체제의 우월성에 기인한다. 그 기초 중의 기초는 자유다. 서구 역사에서 르네상스, 종교개혁, 산업혁명을 관통하는 키워드이자 오늘날 미국을 만들고 유지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자유가 있으려면 인신에 대한 구속이 없고 재산권이 보장돼야 한다. 우리 조상들은 자유를 누리기는커녕 패망하고 일본에 나라를 넘기기 전까지도 그게 뭐 하는 것인지조차 몰랐다.

현대 한국인들은 자유인으로서 반만년 역사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권리를 누리고 있다. 이는 위대한 조상 덕분도 아니고 자기 스스로의 의지와 힘으로 쟁취한 것도 아니다. 미국이라는 외부 세력에 의해, 그리고 이승만이라는 인물의 매개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나는 미국에 사는 우리 아이들이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효심 충만해 조상에 대한 비판을 터부시하고 무조건적으로 미화하기보다는 자유의 가치를 깨닫고 그 소중함을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뿌리인 조선이 왜 같은 시대 다른 나라들보다 뒤쳐졌고 망할 수밖에 없었는지, 인류가 역사에 없던 번영을 누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직시했으면 한다.

아울러 당부하고픈 게 하나 더 있다. 인물 위주로 역사 교육을 할 때 지나친 미화와 긍정은 반드시 폐단이 따른다. 어릴 적 배운 바와 다른 사실에 실망한 나머지 정당한 업적마저 거짓으로 치부하거나 폄하할 수 있다. 아예 진실을 접할 기회가 없는 경우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근거 없는 신화를 재생산하고 맹목적 민족주의에 경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되도록 사실에 근거해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나는 한국인이었고 한국계 미국인이며 한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 부모다.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이 많다.

[관세사 / 그레인저 근무 ]


봉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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