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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사람들] 이민 47년차 ‘로렌스 터줏대감’ 이여근씨

“누군가 제 글을 읽고 믿음을 가졌으면”

이여근(사진·74)씨는 1972년 8월초 켓지와 로렌스 인근 리일랜드에 살던 둘째 형님댁에 여동생, 형님의 대학 동기 동창과 함께 이민짐을 내려놓았다.

첫 직장은 걸어서 10분 거리인 로렌스 소재 소규모 플라스틱 공장이었다. 당시 최저임금인 시간당 2.25달러를 받으며 이민 생활의 터전을 닦았다. 이듬해 봄에는 아내와 시카고에서 재회하고 1975년 사우스 63가에 가발가게를 열었다.

하지만 1년여 만에 화재를 당해 모든 걸 잃었다. 안 해 본 것이 없을 만큼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재기를 도모했다. 아내는 조립공으로 다시 공장 일을 하면서 뷰티스쿨에 등록했다. 그리고 2년여 만에 자격증을 취득, 1983년 겨울 로렌스 거리에 미용실을 오픈해 지금까지 운영 중이다.

1980년대 후반 북부 서버브 디어필드로 이사, 10여 년을 살다가 다시 로렌스로 돌아왔다. 디어필드에 살 때도 비즈니스 때문에 매일 로렌스로 출퇴근 했던 그는 화재를 당했을 때 미시간 주에서 수 개월 거주한 것을 제외하면 로렌스를 벗어난 적이 없다. 로렌스 터줏대감인 셈이다.



그는 “한인 동포들이 교통 좋고 미시간호수도 가까운 로렌스에 그대로 자리 잡고 비즈니스와 생활을 함께 했더라면 지역 학교들도 많이 좋아졌을 것이고 시의원도 배출됐을 터인데…”라며 아쉬운 너털웃음을 지었다.

디어필드에 살던 어느 날. 뒷뜰에 앉아 있던 그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자문을 하는 동안 불현듯 중학교 2학년 때 동화 한편을 써서 국어 선생님께 과분한 칭찬을 받았던 게 떠올랐다. 급히 ‘하늘에 핀 매화꽃’이라는 단편소설을 써서 늦은 시각 저녁을 먹고 있는 아내에게 보여 주었다. ”잘 썼네”라는 아내의 격려에 그는 이후 문학에 입문, 소설과 시를 쓰고 있다. “그때 아내가, 돈 벌 궁리 안 하고 뭐 하는 거요?라고 했다면 아마도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에요.”

초등학교 선생님 15년을 마치고 선교 활동 중인 미혼의 딸과 연방공무원으로 가족과 함께 LA에 살고 있은 아들이 있는 그에겐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하나 있다. “제 글을 읽고 하나님을 믿지 않던 단 한 사람이라도 교회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 주님께 쓰임 받고 사는 거에요."


James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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