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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봉의 미국에서 세자녀 키우기] 정체성

봉윤식
봉윤식 기자

[시카고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4/11 20:03

미주중앙일보에 한인 2세와 이중국적, 그리고 정체성 문제를 다룬 행사가 실렸다. 나도 아이들 셋 모두 미국에서 낳은 관계로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남 얘기 같지 않아 자세히 읽게 된다.

기사의 주인공은 한인 남성인데 변호사로 성공했으나 흑인 대통령 시대에도 변함없이 인종차별을 느꼈고 지금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고 한다. 군대 문제로 한국 국적을 포기한 데 대해 죄책감을 느꼈고 그래서 더욱 의도적으로 한국과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고.

이민 1.5세대 그리고 일부 2세에서 정체성 문제가 간혹 보인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특히 부모를 따라 들어왔으나 체류 신분에 문제가 있는 경우 문제를 갖기 쉽다고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교육은 물론 직업도 제대로 갖지 못하니 사회에 소속감을 갖지 못하게 되고 겉돌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문득 의문이 든다. ‘불체’와 같은 극단적 상황을 제외하면 한국 말고 다른 나라, 예를 들어 일본이나 중국 또는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도 그렇게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까. 유럽계 이민자들은 외모가 주류와 같기 때문에 쉽게 동화되는 반면 아시안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한국계든 일본계든 2, 3세로 갈수록 보통 미국 사람과 다를 바가 없어지는 걸 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군문만 봐도 장성은 물론 해리 해리스 현 주한대사처럼 미군의 최고위직까지 오르지 않나.

섞여 살다보면 "뿌리"에 대한 기억은 점차 희미해지기 마련이지만 여전히 많은 미국인들이 이민자인 조상을 기억한다. 3대 위 할아버지는 폴란드에서 왔고 어머니의 할머니는 자메이카 사람이라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정체성에 혼란을 겪진 않는다. 선조는 선조고 나는 나니까.

이민으로 인해 남들과 조금 다른 배경은 본인과 주변을 풍요롭게 하는 자원이 될지언정 주류에 속해있지 못하다는 불안의 원천이 되진 않는다. 어느 특정 국가나 사회에 대한 일방적 귀속감보다는 개인 그 자신에 주목하고 공동체와의 건전한 관계를 추구하는 게 미국의 보편 당연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기사의 주인공을 포함해 일부 한인 1.5-2세들은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걸까. 혹시 그가 받았던 교육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가만 보면 내 아이들 한글학교 교재도 그렇거니와 한국의 공교육 중 국수적 민족주의가 드러나는 부분이 꽤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라든지 머리가 좋고 불굴의 의지가 있는 자랑스러운 한민족이라는 등의 내용이다.

어릴 적부터 뿌리와 민족을 강조하고 강요된 정체성을 주입 받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류 사회의 가치와 모순이 생기고 사고방식의 충돌로 인해 혼란을 겪게 된다. 기사에 나온 사람이 군대 문제로 국적을 바꾼 뒤 죄책감을 갖게 됐다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발생한 일이다. 개인의 행복을 위해 국적 포기는 당연한 것인데 그것이 마치 민족을 배신하는 행위인양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와 자리를 잡은 사람이 한국에서 살 것도 아닌데 군대 안 가고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에 왜 죄책감을 가져야 할까. 희생에 대한 보상은커녕 싸구려 소모품 취급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인 게 한국의 현실이다. 그런 군복무는 하지 않는 게 정상이고 그걸 거부하는 개인이 많아져야 공동체도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하게 된다.

공동체의 유지와 번영을 위한 개인의 헌신과 희생은 분명 가치 있고 치하할만한 일이되 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받을 것은 아니다. 개인이 있고 나서 공동체와 국가가 있는 것이고 행복하지 않은 개인들이 모인 의무만 강요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역사에서 개인에 대한 인식과 관념이 나타난 것은 중세 유럽부터다. 르네상스는 신과 동등한 개인의 아름다움을 발견했고 종교개혁은 신과 일대일로 마주한 개인에게서 시작했다. 아시아는 그보다 늦었지만 일본이 가장 먼저 개화한 이래 서구의 사상과 가치를 받아들여 지금은 개인에 대한 관념이 많이 보편화됐다. 심지어 공산주의 일당독재 치하의 중국에서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개인주의가 날로 확산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여전히 개인을 터부시하고 "우리"로 대변되는 집단 우선 문화가 여전하다. 게다가 오래된 씨족 중심 농경사회의 전통이 20세기초 일제치하의 아픈 경험과 맞물려 열등감이 내포된 국수적이고 폐쇄적인 민족주의로 진화했다. 세계사적 흐름은 도외시한 채 무조건 "우리 것"이라면 맹목적으로 찬양하고 보는 행태를 보인다.

직지심경에 쓰인 고려의 금속활자는 세계 최초였지만 인류의 발전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 반면 그보다 늦었던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서책의 대량 생산을 통해 르네상스를 앞당기고 종교개혁을 촉발한 공이 있다. 무조건 세계 최초 금속활자는 한국 것이라며 주입된 자부심을 간직하다가 훗날 실상을 알게 된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할 것이며 정체성의 일부를 구성하는 한국에 무엇을 느끼게 될까.

미국에서 유럽계는 물론 일본계 이민자들은 빨리 그리고 쉽게 동화된다고들 한다. 나는 그것이 개인주의의 토대가 굳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력으로 홀로 선 개인은 자신의 권능으로 세상과 맞설 수 있다. 정부를 상대로 투쟁한다거나 하는 얘기가 아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개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살면 된다는 뜻이다.

정체성 문제는 개인의 존재감이 미약하고 집단 정서가 강한 경우에서 도드라진다. 한국에서든 미국의 한글학교에서든 과도한 민족주의 교육을 지양했으면 한다. 그래야 유독 한국계 이민자들이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며 우는 소리하는 걸 덜 보고 덜 듣게 될 것 아닌가. [관세사, 그레인저사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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