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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아들에게

아들아

보이는 것만 쓰다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은 쓸 수가 없고, 보이는 것만을 그리다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은 그릴 수 없단다.

제일 유념해야 할 부분은 분주함이다. 분주하다 보면 내 앞에 펼쳐진 길 밖엔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봄이 오는 것도 느낄 수 없고, 새벽의 적막을 깨고 동이 터 오르는 것도 하루 해가 저물어 붉게 물들어 가는 저녁 노을조차 기억할 수 없는 무료한 세월만 맞이하고 흘러 보낼 뿐이다.



연분홍 릴리나 노란 수선화가 어느날 갑자기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니란다. 싹을 내고 손가락 한 매듭씩 자라나기를 여러 날 밤을 지낸 후 마침내 신비한 꽃을 펼치고 향기를 뿜어내는 것이란다.

아들아

한 순간 무엇을 이룰 거라는 생각은 버리려무나. 세상엔 그렇게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단다. 인고의 아픈 땀방울 없이 기쁨의 순간들을 가질 수 없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럼에도 견디어 내고 기다릴 줄 아는 성실함을 잃지 말거라. 오래 참고 기다릴 때 슬픔은 그 참담함을 극복하고 오히려 감사의 조건으로 네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니 굳이 유익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말거라. 행복과 불행을 나누지 말거라. 가난함과 부유함을 셈하지 말거라. 그 모든 것들은 지나는 과정이요, 거쳐야 하는 수고이기에 모두 다 소중하고 귀한 순간임을 잊지 말거라.

아들아

오늘 화가 나고 견딜 수 없어 무엇인가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면 네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려무나.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키거라. 우리에겐 좋고 나쁜 것, 달고 쓴 것, 기쁘고 슬픈 것조차 안고 가야 하는 것이기에 이따금 사소함조차도 내면 깊이 받아들여 용서와 위로의 강 줄기로 흘러보내길 바란다. 세상의 모든 건강과 아름다움을 초월하여, 모든 평판과 칭찬을 초월하여, 밖으로 부터 들려오는 모든 것들을 초월하여 내 안에 쉼을 가질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

아들아

지난밤 비바람 속에 쓰러졌던 꽃줄기들이 오늘 아침 바르게 세워진 것은 작은 꽃밭 조차도 네 손길이 아닌 그것들을 가꾸는 세미한 손길이 있음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내 인생의 순간 순간에서도 나의 노력과 희생과 땀과 수고를 넘어 쓰러진 나를 도우시고 일으키시는 손길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그분의 놀라운 은혜의 손길과 소중한 용서와 위로 앞에 날마다 감사의 두 손 모으는 시간을 잊지 말거라. 사람의 이해로는 납득되지 않지만 그 분이 가꾸시고 돌보시는 또 한 세상이 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꿈속에서라도 너를 향한 기도 잃지 않으마. (문인회장)

푸른 점 하나 / 신호철

간혹 잊고 사는
티끌 같은 존재
푸른 점 하나 같은
날 사랑 할 일이다
그러나
누구를 향해
무엇을 위해
맹세하거나
정의하지 않을 일이다
다만 내게 주어진 길을 걸으며
만나게 될 사람들을 위해
내 분량을 덜어낼 일이다
그리하여
가벼워진 몸으로
당신에게 날아갈 일이다
푸른 점 하나로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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