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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무당벌레

무당벌레

봄 볕 따스한 마당 / 무당벌레 한 마리 내 손등에 앉아 / 지난 삶 얘기 하네요/ 넌 어느 행성에 머물다 내려온 별이니? / 한참을 머물러 있더니 / 실력이 곧 생존임을 증명 하듯 / 딱딱한 껍질 속에 감추어 둔 비밀병기 / 빛나는 은빛 날개를 펼치더니 / 대답 없이 나무숲으로 간다/ 잠시 이 땅에 머물다 사라지는 / 우리와 같이

날고 싶지 않은 날 / 널 안고 바람에 흔들릴 땐 / 확인하곤 했었지 / 등나무 잎사귀 끝이 어떻게 말려 있는지 / 그 끝이 어떻게 떨고 있는지 / 서둘러 떠나는 아침을 두고 숲으로 가야지 / 고통이라는 선물 하늘에 날리며 / 유사한 껍데기 연지 곤지 멋 내고 / 아름다운 님 기다리는 숲으로 가야지

한 없이 매달리고 싶은 날도 있었지 / 말하는 것은 들음으로 깨어나고 / 각진 네 어깨가 곡선으로 휘어질 때 / 딴 우주 어느 공간에서 날아와 / 얇고 빛나는 날개를 비비는 너 / 발끝이 들려 푸르게 매달려 있다가 / 바람의 끝 일렁이는 작은 행성이 되어 / 아직 설레임으로/ 숲속 어딘가로 곤두박질 날아가는 너 / 그때 죽음 같은 바닥을 느꼈지



흐드러지게 핀 복사꽃 가득 / 아득한 안개 포말 속으로 / 눈물 훔치며 떠난 네 유희를 좇다 / 돌아와 나도 나의 숲으로 간다 / 노을 맞다 아 벌겋게 타 / 어느 행성 돌아온 별들로 떨어져 / 또 우린 봄볕 따스한 어느날 / 기약도 없이 세월을 거슬러 / 무엇이 되어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랴(시카고 문인회장)

따뜻한 햇살을 타고 무당벌레 한마리 내 손등에 앉는다. 헬리콥터의 파랑개비 소음도 없이 사뿐히 내려앉은 너. 손등을 간지르며 한참을 활보한다. 반질반질한 네 등엔 연지 곤지 예쁜 문양을 그려놓고 "나 참 예쁘지" 자랑하듯 내 손 구석구석을 탐닉하고 있다. 기대하지 않은 불청객이지만 작고 앙증맞은 이 작은 곤충에 매료되어 난 나를 잊은 듯 했다. 나의 오늘은 마지막과 같아서, 소중한 것이어서 오늘은 내게 다시 올 수 없는 것이어서 오늘 날아온 너는 소중하고 애틋하다. 넌 내게 온 선물. 노란색 주홍색 연보라로 하늘에서 떨어진 축복. 푸른 하늘에 점 하나로 살다 내게로 온 생명.

사랑하는 대상의 얼굴과 몸짓에서 읽어내는 모든 것. 비밀과 우수, 불안과 피곤함 조차도 삶의 순간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모두가 행복한 순간이다. 성숙된 모든 것들은 고개를 숙인다. 그렇지 않으면 자세히 볼 수 없기에 아래로 자꾸 낮은 곳으로 자신을 내린다. 자연스레 발걸음이 집으로 가는 건 나도 모르게 깊은 신뢰가 쌓였다는 증거다. 이 믿음의 신비는 같은 교감을 느끼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본 것과 같다.

바람에 기대어 스쳐 지나도 담겨져 오는 감흥은 봄날의 충만함과 같다. 네가 너의 숲으로 떠나듯, 나도 나의 숲으로 간다. 움켜쥔 손에 힘을 뺀다. 그리고 펼친다. 무당벌레 한마리 자유로이 노닐 수 있게. 문턱이 낮아지고 내어주는 인생이 될 때 내가 숲으로 되돌아 갈 수 있음이 자유롭게 느껴진다. 손을 움킨 채 내 안에 남아있으면 더 이상 그곳엔 사랑이 없다. 고요함이 길들여진 숲에서 귀를 세우고 눈을 뜬다. 거기엔 사뭇 다른 그러나 조화로운 소리와 다른 행성의 별빛들이 모여 사는 행복의 나라가 보인다.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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