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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다시 떨리는 가슴으로

가슴이 뛴다. 뛰기 시작한다. 얼마 만인가. 생의 활력과 희망을 주는 이 강렬한 진동과 기쁨은. 믿음은 바라고 염원하는 것의 실상으로 나타난다. 고장 나서 멈추었다 다시 시작하는 열차의 기적소리가 들린다. 와신상담하며 부서진 엔진을 갈고 닦았다. 서부로 향하던 마차는 바퀴도 없이 사라졌다. 그런데 내 삶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먹고 잠자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망설이고 도전하는 삶의 방식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마차는 먼 길 가는 수단과 방법이었을 뿐 내 인생의 목표는 아니었다. 어디서 사느냐 보다 어뗳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됐다.

희망은 절망을 이긴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가슴 속 불씨 하나 간직하면 불꽃은 다시 타오른다. 새 출발은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볼 때처럼 숨 가쁘고 짜릿하다. 썰물 되어 떠나간 것들을 연연해 하지도 비통해 하지 않을 테다. 썰물은 어제의 아픈 추억과 상처를 지운다. 더 이상 슬퍼할 시간이 없다. 열심히 살았고 적당히 늙었으며 아직 살아갈 날들이 가을 햇살처럼 따사롭다. 안달하며 욕심부리지 않고, 움켜쥐지도 놓치지도 않고, 내세우지도 쫄지도 말고, 실수와 절망을 두려워 말고, 생의 앙금으로 남는 시간들은 보석처럼 목에 걸고 살기로 한다.

오래 전 친한 변호사가 “네가 좀 말려 주라. 내일 모래면 80살인데 어머니가 다운타운에 화랑을 여시겠대”라고 했다. 친구 어머니는 고가 작품 판매로 유명한 세계적인 화랑에서 잘 나가는 에이전트로 평생 일했다. 나이 탓인지 무슨 연유인지 그만 두셨는데 일 하던 회사 바로 앞에 자기 화랑을 오픈하기로 한 것. “네가 자금 대줄 요량 아니면 왠 걱정? 하고 싶은 일 하시게 내 버려두지”라고 하니까 친구는 껄껄 웃었는데 비난은 아니고 약간 대견(?)해 하는 눈치였다.

“이사 못 갔다고 속 끓이지 말고. 사업에 그만 매달리고 적당히 일하세요. 여행 다니고 손주들 보며 이제 편안하게 살아요.” 아들 딸 친구 이웃 동료들의 덕담 같은 충고다. 이럴 땐 “니가 나를 알어?”라며 받아치려다 꼬리 낮추고 “그럴 생각이예요”라며 내숭 떤다. 중서부에서 이만큼 벌렸으니 서부에 가면 번데기 주름 잡듯 새로 큰 판 벌려 성공하겠다고 장담했었다. 여긴 40년 갈고 씨 뿌린 내 고향 내 땅이니까 그 결단과 노력 반 만 해도 다시 일어서기가 쉬울 것이다.



내일은 결판 나는 날! 가슴이 뛴다. 그 동안 기획했던 사업의 마지막 절차를 거치는 날이다. 승인 나면 본격적인 착수 작업에 들어간다. 새 건물을 착공한다. 늦게 낳은 자식을 더 애지중지하듯 산전수전 다 겪었으니 더욱 공을 드릴 터. 김 빼고 바람 넣고 말리면 의기소침해 질까 봐 애들이나 친구들과도 의논 안 했다. 혼자 책임 질 각오가 돼 있으니 성패 여부도 내가 짊어져야 할 지게의 무게다.

사랑이던 사업이던 가슴이 뛰지 않으면 반은 실패한다. 나는 여지껏 내 가슴이 뛰는 방향으로 살아왔다. 성공인지 실패인지 모르지만 후회 없이 살았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준비는 완료됐다. 갑옷 안 입고 전투에 뛰어드는 바보 장수 있으랴! 미팅에 입을 의상은 직업과 품위를 잘 드러내는 걸로 골라두고 신발 가방 악세서리 챙기고, 흰머리 염색하고 시집가는 처녀처럼 단장을 한다.

나는 가슴이 말하는 소리를 매일 듣는다. 양심은 속여도 가슴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홈런이던 스리아웃이던 공은 이미 내 손을 떠나 푸른 창공을 날아가고 있지 않는가. (Q7 Fine Art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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