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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태양을 향해 가라

쫄지 말고 어깨 펴고 돌진하라. 살기 힘든 때일수록 새기고 극복해야 할 문구다. 요즘 아침이면 매일 새 집터로 간다. 새로 짓는 집은 지금 사는 집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이다. 몇 주 전부터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고 지하에 콘크리트 벽을 쌓기 시작했다. 산더미 같이 흙만 쌓여 있는데도 하루도 안 거르고 가서 보고 또 본다. 내가 마지막 살 집이라 생각하니 안쓰럽고 짠하다. 35년 전 지금 사는 집을 지을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다. 그때는 세상을 모두 가진 것처럼 흥분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룩한 확실한 증거는 화려한 저택과 명품 자가용을 갖는 것이였다. 차별 받지 않고 무시 당하지 않기 위해 뼈와 살이 삭도록 일을 했다.

친정 어머니는 미국 구경 오셨다가 만삭인 몸으로 사업하는 딸이 애처로워 차마 발길을 둘리지 못하셔서 함께 이민자가 되셨다. 영화 ‘미나리’를 연상시키는 국산 할머니 사랑 받으며 아이들은 잘 자랐고 덕분에 사업도 확장 됐다. 애들은 억척 같은 할머니를 잘 따랐고 어머니의 외로운 이국 생활의 낙이 되고 친구가 됐다. 애들이 어릴 적엔 믹서기 돌리기 귀찮으시면 고기는 직접 씹어서 애들을 먹였다. 제 차례 올 때까지 할머니 입안의 고기 받아 먹으려고 참새 같이 입을 벌리고 있던 아이들 생각난다. 정말 행복했다. 사고 쳐 버릇 고치려고 매 들면 쪼르르 할머니 등 뒤에 숨어 눈알만 굴린다. 할머니는 두 팔 벌리고 애들 때릴려면 ‘내 몸을 밟고 가라’고 버티셨다. 애들은 손뼉 치며 광팬으로 응원했고 내가 지는 그 게임이 무척 좋았다. 화투판 벌리다 들키면 서로 자기가 할머니 졸랐다며 할머니 무죄를 주장, 주범 확인이 안돼 처벌이 불가능했다. 할머니 손에서 자란 애들은 버릇 없다는 말은 빈 말이다. 어른 밑에서 자라면 인사성이 밝고 남을 섬길 줄 안다. 우리 애들은 교회 파킹랏에서 어르신을 만나면 배꼽 인사하고 문 앞까지 손을 잡아 드린다. 할머니가 키운 애들은 정이 많다. 사랑은 받은 만큼 베풀 줄 안다.

애들이 북적거릴 때는 몰랐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떠나간 집은 황량한 들판 같다.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집은 너무 크고 비어있다. ‘사람이 집을 이겨야지 집이 사람을 이기면 안 된다’는 어머님 말씀처럼 ‘크고 화려한 저택’이 아닌 ‘작고 아담한 새 집’을 갖고 싶었다. 남은 인생을 정리하고 마칠 수 있는, 마지막까지 내 손으로 정리하고 쓰다듬을 나만의 공간을 연출하고 싶었다. 누구를 위해서도 자랑할 필요도 없는 나의 작은 집! 초가삼간(Straw House) 문패 달고 유배 당한 선비(?)처럼 살아갈 아늑한 휴식에 가슴이 설렌다. 나이듦과 죽음에 흔들리지 않고, 주름 잡히는 얼굴과 손등을 어루만지며, 세월이 갈라치는 이별을 견뎌내고, 시계 바늘이 멈출 순간의 두려움을 감내하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는, 안식과 평온을 주는 집. 복숭아꽃 만발한 무릉도원 가는 길목이 거기에 있으리라

오늘도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진척이 있나 없나 새 집으로 향한다. 눈을 뜰 수 없도록 태양볕이 찬란하다. 멋 좀 내려고 짙은 선글라스를 낀다. 태양은 지구를 송두리째 덮고 있는 것처럼 황홀하다. 수만개의 부채살을 펴고 내게로 빛을 쏘아올린다. 그동안 어둠 속에 나를 가두고 불안과 절망에 휘둘리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 이토록 찬란한 밝음이 남은 길을 밝혀 주는데 괜시리 걱정하고 의기소침 해져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를 읊조리며 유쾌하게 페달을 밟는다. 어둠이여 물러가라. 태양을 향해 내가 간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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