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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패밀리 나이트!

허선영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대상 수상자

십년도 훨씬 전에 미국에 건너 와서 느낀 문화적 차이는 가족들끼리 보드게임을 하거나 같이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가족끼리 극장가서 영화를 볼 수도 있고, 비디오를 빌려서 집에서 볼 수도 있었지만 특별히 그런 행위나 날들을 꼬집어 지칭하지 않았기 때문에 색다른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특히나 보드게임이란 용어는 친숙하지 않았기에 대표적인 게임은 명절 근처에나 가족 대항으로 친척들과 하는 윷놀이가 전부였다. 아, 초등학교 시절 즐겼던 브루마블이라는 모노폴리같은 게임을 하기도 했지만 부모님과 함께하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고, 또 결혼을 하고 취학 전 아이들을 데리고는 간단한 퍼즐 맞추기나 한창 유행하던 몬테소리, 가베 등등의 교구로 놀아주는 것 말고는 방귀대장 뿡뿡이와 뽀로로가 아이들을 반은 키웠다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미국에 도착한지 한두 달쯤 되었을 때 남편의 학교 친구 로버트가 집으로 초대를 했다. 6살 큰딸과 4살 아들하고 같은 나이의 두 딸, 그레이스와 메리케서린 그리고 아내 로리를 만났다. 나는 서툴지만 용감한 영어로 어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ABCD도 모르는 아이들이 잘 지낼까하는 걱정을 내려놓기 힘들었지만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걱정이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하던 놀이는 젠가였다. 나무 블록을 쌓아 올려서 한사람씩 빼서 무너뜨리는 사람이 지는 게임. 어릴 적 학교 운동장에서 모래성을 쌓아 깃발하나 꽂아놓고 조금씩 긁어내다 깃발이 무너지면 지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위층에서 깔깔거리며 웃던 아이들은 조그만 박스를 가지고 우르르 내려와서 같이 게임을 하자고 졸랐다. 그것은 픽셔네리라는 게임이었다. 하얀 종이에 그림을 그리면 나머지 사람들이 추측을 해서 답을 맞히는 것. 뽀인트를 잘 찾아서 그림을 그리면 유리하지만 뽀인트를 잘 찾아도 그림실력이 형편없다면 파트너의 고도로 발달된 센스만이 답을 맞힐 수 있는 게임이다. 낯선 곳에서 정착하느라 항상 긴장하고 지내던 초창기에 아무 생각 없이 눈가에 주름지도록 깔깔 웃었던 날이었다. 어쩜 우리 가족은 그림을 못 그리고 또 센스도 없는지, 오답 투성이들을 쏟아냈지만 그 덕에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다음날, 우린 월마트에 가서 바로 픽셔네리와 젠가를 샀다. 보드게임에 눈을 뜨자 엄청난 종류의 연령별 보드게임에 입이 쩍 벌어졌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방귀대장 뿡뿡이를 떠나보내고 각종 보드게임을 섭렵하며 여가시간을 보냈다. 사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머무르다보면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패밀리 게임나이트’라는 전제하에 남편과 나는 꼼짝없이 붙들려 옆에 있었다. 그러다보니 꼼수가 생겼다. 특히나 우리가 잘 써먹던 방법은 옆에 앉아서 딴 짓을 하며 남편의 말은 아들이 관리해주고, 엄마의 말은 딸이 관리해달라고 부탁을 하면 자기들끼리 주사위를 굴려가며 두 사람 몫의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리고는 아빠가 일등이라고 말하면 두 팔을 벌려 기뻐하면 되거나 엄마가 꼴등이라고 말해주면 입을 삐죽거리며 슬퍼하면 되었다. 패밀리 게임 나이트가 정착 되어갈 즈음, 큰딸이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또 다른 문화를 접수해왔다. 일명, 패밀리 무비 나이트! 가족끼리 팝콘을 먹으며 주말에 같이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별 어려운 것도 아닌데, 우리도 시작해 보자!
디즈니 에니메이션을 시작으로 주말마다 영화를 봤다. 추운 겨울에는 거실에 이불하나씩 끌고 나와서 옹기종기 모여서 봤고, 더운 여름에는 속옷 바람으로 숟가락 하나씩 장전하고 아이스크림을 통째 퍼먹으면서 영화를 봤다. 물론 남편과 나는 끝까지 집중하지 못했다. 대부분 한번은 본 영화임을 감안하더라도 왜 그렇게 패밀리 무비 나이트에는 잠이 쏟아지는지... 깜빡깜빡 졸고 있어도 아이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냥, 엄마아빠가 같은 공간에 있으면 되었다. 가끔씩 악당이 주인공을 괴롭혀서 궁지에 몰릴 때, 시끄러운 배경음악에 잠깐 눈을 떠서 짧은 추임새를 넣다 아이들을 보면 초조한 듯 눈이 땡그랗게 커져있었다. 몇 번을 보던 영화도 처음 보는 것처럼 보는 아이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같이 보던 영화들도 바뀌어갔다. 디즈니나 픽사의 에니메이션에서 시작해서 나홀로 집에,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시리즈까지... 여기까지가 이제 대학생이 된 큰딸과 4학년이 된 막내와 함께 할 수 있는 가족 영화다.

패밀리 게임 나이트나 패밀리 무비 나이트의 공통점은 가족과 저녁이라는 것이다. 아빠, 엄마가 야근이나 회식을 하지 않고 퇴근한 저녁에 가족이라는 이름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한다면 일등을 하던 꼴등을 하던, 잠깐 한눈을 팔던 꾀를 부리던 한번 이겨보겠다고 눈에 불을 켜던 평상시에는 몰랐던 서로의 성향도 파악되고 생각지도 않은 에피소드가 터져 나오며 추억도 쌓인다. 혹시나 직업 특성상 야근을 해야 한다면 낮에 간단하게라도 가족들과 한 게임 하시길 추천한다.

허선영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대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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