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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현 문학칼럼: 35년 베테랑 교사에게서 배우는 것

-미국 공립학교 한인 협조 교사의 기록-

#35년
교사 P를 만났을 때, 나이는 50대에서 60대 사이에 있을 것 같고, 파마를 한 붉은 기운이 있는 갈색 머리카락은 가발처럼 잘 정돈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키가 큰 편인데, 어깨가 살짝 앞으로 구부정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현재 나는 그녀의 교실에서 약 2주째 협조 교사 일을 하고 있다. 중간에 같은 학교 다른 반에서 대체 교사 일을 하기도 했다. 오늘은 P에 대해 써 보기로 한다. 그녀의 교실에서 그녀의 교육 현장을 보고 들으며 느낀 바가 있다.
소제목처럼 그녀는 교사로서 무려 삼십 오 년이나 일을 했고, 이 유치반에서만 이십년이 넘게 일을 했다고 한다. 나는 그 숫자가 주는 압박감, 경이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십년의 세월이 녹아 있는 바로 이 교실, 이 교육 현장에 2 주나 같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이 참 우연치 않은 복이다. 내년 유월에는 은퇴를 한다고 하시니 이번 유치반이 그녀의 마지막 반이 되는 셈이다.

#관리, 신경, 관찰
한 가지 일을 이십 년 이상, 그것도 한 공간에서 매일 일을 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아우라는 뭘까? 그녀에게 특별한 마술 같은 건 없었다. 다만 이 분에게는 정말 놀라운 '섬세한 눈'이 있었다. 한 교실에서 스물 네 명의 다섯 살 아이들이 쫑알대고 시끄럽게 굴고, 여기 저기를 헤집고 다니고, 교사 몰래 무엇을 하는 것 같은데, 그녀는 이 모든 것을 말없이 짧은 시간 동안 캐치해 냈다. "너희들이 뭘 하고 있는지 이 선생님 눈에는 다 보인다." 그 말이 사실 같다.


또한 유치반 전문가로서 이 선생님의 교실에는 아주 확실한 상/벌 체계가 있다. 아이들은 매번 좋은 일, 착한 일, 교사/학교의 말을 잘 들을 경우 작은 스티커 일 인당 한 개씩 받는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적힌 '스티커 북'에 총 25개의 스티커를 모으면 완성이다. 25개의 스티커는 곧 상 한 개다. '상'의 목록에는 작은 장난감, 사탕 등이 있다.
P선생님은 정말로 일일이 모든 아이들의 손 글씨 handwriting이나 색깔 칠한 것들을 꼼꼼하게 체크한다. 이렇게 알파벳쓰기와 fine motor skills 미세 동작 기술에 관심을 갖는 교사는 정말 자신의 일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아닐까. P선생님의 '벌'에 해당하는 것은 다른 교사에게서도 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녀의 분노 지수가 정해져 있다. 1,2이면 괜찮은 것이고 3이라 할지라도 나 같으면 이미 뚜껑이 열렸을 것 같아도 그녀는 목소리가 조금 커 지고 그 목소리에 힘이 있다. 오늘도 학생 M은 나와 함께 옆반으로 가서 10분간 그 교실에서 앉아 있어야 했다.

#담임 교사와 보조 교사/협조 교사의 궁합
다행이게도 담임 교사 P는 나의 도움을 긍정적이고 고맙게 받아들여줬다. 내 일은 그녀의 수업을 돕는 것이기에 이 교사와 나와의 궁합이 상당히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대체 교사로 일을 하면, 하루 동안 온전히 그 교실을 혼자서 책임질 때가 많다. 하룻동안일지라도 그 책임감이 있는 대신, 그만큼의 자유도 있다. 아이들이 점심을 먹으러 가거나 하면 나 혼자 그 교실에서 조용한 몇 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협조 교사의 경우 내 교실이 없다. 주로 Staff Room 스태프 룸이 휴식 공간이 된다. 내가 이 교실에서 일한 지 며칠이 된 후부터 나는 P로부터 '아프지 마세요. (아파서 학교에 못 나오면 안됩니다.), 아 당신이 가고 나서 월요일부터 혼자서 어떻게 할지 깜깜하네요.' 등등의 말을 들었다. 그 말 자체가 내게는 큰 보상이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고 듣는 것만큼 뿌듯해 지는 일도 없다.

#저임금 low income, 질 낮은 교육 환경
일 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콜로라도 주와 워싱턴 주에서 협조 교사, 대체 교사로 일하는 학교는 대부분 도시 시내에 위치한 학군들이며 low income 부모의 수입이 적고, 환경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다. 사실 어떤 아이들에게서는 며칠씩 씻지 않아 냄새가 나기도 한다. 어떤 아이들을 보면 정말로 이 아이의 부모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어제 오늘 입은 옷이 똑같고 손톱 밑도 거멓다. 하, 내가 5년전 미국에 오기 전 '미국에 대한 내 생각과 상상'이 얼마나 망상에 가까웠는지를, 이 아이들을 보면서 절감한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료 급식으로 아침, 점심을 받는다.


#대체 교사/보조 교사는 힘들어
이 학교에서 하는 대체교사 일은 이번주 금요일이면 끝이 난다. 대략 한 달 정도 일한 셈이 된다. 휴우. 콜로라도 덴버 공립학교에서도 그랬었다. 대체교사라서 수업 준비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되고, 학부모와 상담할 일도 없어서 뭔가 책임감도 덜한 것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쉬운 건 아니다. 집에 오면 온 기운이 다 빠진다. 그래도 '부녀자'의 역할을 채우기 위한 가사 노동도 남아 있다. 식사 준비. 아아아. 세상에 고상한 일은 하나도 없는 것 같고, 공으로 얻어지는 일도 없다. 다만 대체 교사로 일하면서 심각하게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음을 감사히 생각하고, 그래도 이 타국에서 돈벌이를 할 수 있음에 고마움을 느끼고, 또 그래도 이렇게 몇 자라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힘과 여유가 있음에 고개를 꾸벅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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