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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열 목사의 종교칼럼: “달라스로 보내신 하나님”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얻게 되는 중요한 이점은 인생의 역경을 다 겪고 난 사람들의 깨달음과 고백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인생역전을 살았던 수많은 성도 중에 요셉을 예로 들어보자. 요셉은 21년 만에 만난 원수와 같은 형제들에게 이렇게 고백하였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5).

요셉의 고백에는 원수들이 예상하지 못한 너그러움과 넉넉함이 담겨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는 신앙이 담겨있다. 그러나 요셉의 이런 생각과 고백은 처음부터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17살 어린나이에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인하여 이집트로 팔려가 종살이를 하고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고 총리가 되어 극적으로 형제들을 만나는 지난 21년 동안의 여정을 통하여 비로소 이런 깨달음과 신앙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요셉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나를 미리 이곳에 보내셨다”는 생각으로 이민생활을 한 것이 아니었다. 21년이라는 험난한 이민 생활을 다 경험해 보니 “아하! 내가 이곳 이집트에서 살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때문이었구나!” 하고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면 요셉의 신앙적 고백은 달라스로 이주하여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해 볼 수 있다. 오늘 우리들은 내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미국생활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정착을 하든 유학생으로 생활을 하든 미국생활이 녹록치 않음을 경험하고 있다. 언어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어려움과 신분적인 불안함도 있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요셉과 같이 미국 땅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요셉이 역경을 다 겪은 후에 고백한 메시지를 알고 있다. 즉 요셉이 고백한데로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나의 의지도 아니고 다른 사람 때문에도 아니다....오직 하나님이 나를 누군가를 위하여 앞서 보내주신 것이다” 라는 교훈이다. 우리가 이 교훈을 굳게 붙잡을 수만 있다면 요셉이 경험한 놀라운 역전극을 우리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성도가 요셉과 같이 10년, 20년 후에 “하나님이 나를 미리 이곳에 보내셨다” 라고 고백할 것을 예측하면서 미래의 고백을 현재적으로 적용하며 살 때 얼마나 큰 유익을 얻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나를 미리 이곳, 달라스에 보내셨다” 는 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첫째, 자기 자신과 이웃과 환경 등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사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감사할 거리가 많은가? 자기의 능력 때문이라고 자만하지 말자.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었으면 그 많은 일들을 감당할 수 없었음을 고백하자.
불평거리가 많은가? 너무 괴로워하지 말자.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믿고 환경에 구애받지 말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상황을 탓하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 하시는 섭리를 기대하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산다. 그 어떤 원인을 다른 요소에서 찾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찾고자 하기 때문에 불평, 불만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현재는 비록 실패하고 힘들어도 결코 패배의식이나 불평에 섞인 미래를 예상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소망과 기쁨이 동반되는 새로운 기회를 예상한다.
둘째, 하나님의 비전을 붙드는 것이다. 손해가 올지라도 꿈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 때문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고이 간직하고 언젠가 그 꿈은 이루어지리라고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요셉이 형통 (success) 하도록 도우셨다. 그러나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은 요셉의 형통은 종살이, 감옥살이에서의 형통이었다는 것이다. 매우 억울하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고... 자유가 없고... 인격이 무시되는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형통해 봤자....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거지 보다 더 나을 것이 무엇이 있는가? 어떤 면에서 자유가 있는 거지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요셉에게 “형통 (success)"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렇다면 이 형통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경제적인 부나 신분상승과 같은 면에서의 형통이 아니다. 이 형통은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꿈을 성취하기 위한 성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각 성도들에게 성취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인도하고 계신다. 그런데 그 꿈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자들에게 성취되는 것이다. 그리고 꿈을 성취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성도들을 형통케 하신다. 그런데 그 형통은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꿈이 성도에게 성취되는 것이 진정한 형통 (success)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에게 “형통 (성공)” 이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꿈이 성취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나를 달라스로 보내셨다”는 신앙으로 성도의 삶을 돌아보면 형통에 대한 해석도 달라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롭게 펼쳐 주실 2019년도라는 새로운 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꿈을 잃지 말고 그 꿈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 한다.
셋째, 자기의 형통함을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요셉은 자기가 누리고 있는 권력과 물질의 부요함을 사람을 구원하는데 사용하였으며 원수를 갚는데 사용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는가? 요셉은 자기의 형통함을 자기의 능력과 재주 혹은 행운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의 신앙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성도는 이민 생활을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며 수고하며 살아가면서도 동시에 모든 결과는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됨을 인정하고 성공의 열매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 입술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공하였다고 하면서 자기의 부요함을 하나님의 나라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성공은 오히려 그를 넘어뜨리는 재앙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먼저 달라스로 보내셨다”는 신앙으로 2019년도가 주님의 기쁨과 평화가 넘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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