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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문학칼럼: 할마와 할빠 시즌 2

손녀 민영이가 돌을 맞았다.
영어 이름은 셀린Celine이고, 오빠 준영이와는 4살 터울이다. 작년 8월 28일, 허리케인 하비Harvey의 영향으로 휴스턴에 물 폭탄이 쏟아졌다. 곳곳이 침수되고 도로가 끊겨 병원조차 문을 닫은 상황이었다. 다행히 Emergency Room만 문을 연 메모리얼 병원에서 며느리는 수술을 받았고, 복덩이 손녀는 비바람 속에서도 무사히 태어났다.

우리 부부는 요즘 민영이와 "할마와 할빠 시즌 2”를 연출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아들이 아침 7시 출근길에 데려오고, 며느리가 저녁 8시 퇴근길에 데리고 간다. 하루 13시간 손녀를 돌보느라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다. 딸이 귀한 집에 손녀가 태어나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우리 부모님은 슬하에 고명딸 하나를 두셨고, 나는 아들 쌍둥이를 두었다. 아들 내외도 우리처럼 둘째는 딸을 원했다.

손녀는 아직 걸음을 떼지 못했다. 손자는 돌 때 걸음마를 시작했던 거로 기억한다. 작년에 백일 된 손녀를 맡게 되었다. 앙증맞은 손가락과 발가락이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옹알이도 하고 눈웃음치며 배냇짓을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살이 되었다.
요즘은 눈을 뗄 수가 없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거실과 주방을 쏜살같이 기어 다니며 이것저것 열어 일을 저지른다. 조그만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호기심은 오빠보다 더 많다. 우유보다 할머니가 만들어주는 이유식을 더 잘 먹어 그런지 쑥쑥 크는 것 같다. 아들 내외는 아내의 짐을 덜어주느라 이번 달부터 일주일에 세 번 손녀를 데이 케어에 보낸다. 민영이는 할머니 껌딱지다.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어린 것을 남의 손에 맡긴다고 아내는 걱정이 태산이다.



작년에 손자를 돌보며 썼던 수필 “할마와 할빠”가 ‘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예술 공모전’에 가작으로 입선을 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손주 돌보는 일은 아내의 몫이고 나는 여전히 헬퍼다. 손자가 아기였을 때는 은퇴 전이라 퇴근 후 잠깐 봐주는 정도였다. 하지만 손녀는 온종일 아내와 교대로 기저귀를 갈아주고, 우유와 이유식을 먹이고, 눈높이를 맞춰가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목욕시키고 재우는 것은 아직 못한다.
민영이는 요즘 의사 표현을 제법 잘한다. 미음과 과일 간 것을 잘 받아먹다가 배가 부르면 도리질을 하고, 웃으며 하트를 날리다가도 제 마음에 안 들면 이이~ 이이~ 하면서 짜증도 낸다. 뽀로로 노래를 좋아하고 동요에 맞춰 손짓과 몸짓도 곧잘 한다. 하는 짓마다 귀엽다.

가족들만 모인 돌잔치에서 민영이는 돌잡이로 카메라와 돈을 함께 잡았다. 손자도 아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골프공을 잡았었다. 무엇이 되든 간에 바르게 커서 가슴 뛰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똘똘한 준영이와 예쁜 민영이를 안겨준 며느리는 성격이 밝고 쾌활하다. MD Anderson Cancer 센터에서 Management Analyst로 근무한다. 아들과는 동갑이며 중학교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왔는데, 한국말은 물론 영어도 잘한다. 애들 교육하는 것을 보면, 아들은 부드럽고 며느리는 엄격하다. 우리와 정반대다. 준영이가 주말에 아빠에게 매달리는 것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나는 쌍둥이에게 그렇게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허리케인 하비가 우리에게 주고 간 교훈은 분명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과학자들이 염려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카리브해에서 발생하는 허리케인들이 해수면의 온도 상승으로 인해 예년과는 다른 강력한 폭풍과 엄청난 비를 동반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열대성 저기압이던 하비’가 48시간 만에 4등급 허리케인으로 발전한 데는 텍사스 근해 해수면 온도 상승이 주요인으로 작용해서, 누적 강우량 1300mm로 10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홍수였다. 건강한 지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 “자신 껴안기”라는 주제로 황창연 신부님의 특별 강연이 달라스 한인 성당에서 있었다. 평소 CD로만 듣던 강연을 직접 듣고 싶었지만 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민영이도 무사히 태어났고, 침수피해도 없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황혼 육아로 힘들어하면서도 손주 손을 놓지 못하는 ‘할마와 할빠’들이 주위에 많다. 손주를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고, 솟아나는 엔도르핀 덕분에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손주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좋은 추억을 쌓아보려 한다.
어느새 나도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한순간도 함부로 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게 부족했던 것 같고, 가족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먼 훗날 내 아들과 손주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로 기억될까? 좋은 추억과 삶의 지혜를 남겨주고 싶다. 결혼까지는 아니더라도 손주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봤으면 좋겠다며 할빠는 욕심을 부려본다.
9월이다. 이른 아침의 공기가 다르다. 올 가을에도 우리 가족이 좋은 열매를 수확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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