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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정확하게 영화 읽기

이소영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을 배우면서 ‘님’에 밑줄 긋고 ‘조국’이라고 쓰는 순간 그 시는 죽은 시가 돼버린다.

영화 또한 마찬가지로 어느 지점에서 감동을 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철저히 관객의 몫일 텐데 전문가들이 해석한 의미를 주입하는 순간 영화는 공장에서 찍어낸 공산품으로 전락한다. 창작물을 평론하는 일이 조심스러운 이유다.

그런데 이 어려운 일을 멋지게 해낸 책이 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쓴 ‘정확한 사랑의 실험’(사진)이다. 책에는 ‘러브 픽션’, ‘피에타’, ‘설국열차’, ‘라이프 오브 파이’ 등 27편의 영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랑, 욕망, 윤리, 성장의 4가지 주제로 나눠서 영화의 주제의식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다.
문학을 평론하는 사람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일이 과연 쉬웠을까.

작가는 책을 읽을 때처럼 영화를 다섯 번씩 다시 봤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평은 생선살을 바르듯 철저히 해부하고 현미경을 들이댄 흔적이 역력했다.



작가는 책 머리말에 시인 장승리의 시 ‘말’에서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라는 한 구절을 소개했다. 이 말이 꼭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고 한다. 그 구절을 마음에 새기고 영화에 대한 ‘더’ 좋은 해석이 아닌 ‘가장’ 좋은 해석을 위해 노력했다.

영화를 ‘가장 정확하게’ 사랑하려고 고민했다. 작가는 그래서 영화적 미장센은 접어 두고 무엇이 ‘좋은 이야기’인가에 집중했다. 작가의 고민이 그대로 책에 녹아 형편없는 영화가 얼마나 형편없는가를 말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특유의 섬세한 눈으로 영화 속의 인생과 삶의 의미를 읽어냈다.

굳이 해외 이름난 영화제에 초대받은 걸작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들어 봤음 직한 익숙한 영화를 다루고 있다. ‘재미있다’는 말 한마디로 끝나버릴 유명 영화를 두고 소설과 시, 철학, 윤리학을 버무려 설명한 책을 보니 잘 차려진 20첩 반상을 대접받은 기분이다.

“많은 훌륭한 이야기들의 원천이 대체로 인간의 행복이 아니라 불행인 것은 왜인가. 이런 식이니까 비평적 글쓰기라는 것은 많은 경우 타인의 불행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일이 되고 만다. 이 난감한 일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원칙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불행의 해석학’이 갖추어야 할 ‘해석의 윤리학’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 본문 중
책 속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영화 ‘러스트 앤 본’을 해석한 부분이 흥미롭다. 사고로 다리를 잃은 스테파니와 삼류 복서 알리의 행동을 쫓으면서 작가는 기본적인 신뢰가 갖춰져 있는 조건에서라면 타인의 결여에 대해 취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른 태도는 그것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무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설명한다.

장애가 있는 스테파니를 살뜰히 보살피기는커녕 무심한 태도로 일관하는 알리를 보면서 조금 의아했다. 하루아침에 다리를 잃은 스테파니를 배려한답시고 모두가 그녀의 눈치를 볼 때 알리는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한다. 하지만 그의 이런 태도 덕분에 사랑이 시작될 수 있었다.

말과 글이 넘쳐나는 시대. TV, 신문, 잡지 그리고 SNS에 정보는 차고 넘치게 다양하다. 그런데도 마음에 쏙 드는 글 한 편 발견하기가 어렵다. 이 가운데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 특별한 이유는 영화와 문학의 접점을 찾아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내러티브 비평이란 고작해야 “영화의 줄거리와 메시지에 붙이는 자의적 코멘트”라는 인식을 차곡차곡 뒤엎었다. 봤던 영화라면 평론가의 글귀가 반갑게 느껴지고, 보지 않은 영화라면 당장 다운로드 사이트를 기웃거리게 할 것이다.
 
신형철 작가의 말대로 작품을 해석하는 일 또한 창조이다. 창작가는 무에서 유를 만들고 비평가는 유에서 또 다른 유를 만들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기존 영화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기본 임무는 물론 꽤 괜찮은 창조물을 감상하는 재미까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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