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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역사가 따분하다고?

이소영/언론인·VA 거주

“그냥 외워라.” 학창시절 국사 선생님께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그 시절 선생님들은 국사는 물론이고 수학, 영어, 국어도 죄다 암기과목이라 말씀하셨다. 왜 알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시험에 나올만한 내용만 골라 달달 외웠다. 그렇게 외운 국사 교과서가 지금까지 기억날 리가 없다.

한국 역사가 여전히 따분하고 지루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바로 학창시절 공포스러운 암기 추억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 한국사 중에서도 가장 황금기로 불리는 조선왕조 500년을 재기발랄하게 비튼 책이 있다. 이성주 작가의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조선왕조실록’(사진)이다.

서점을 나가보면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제목의 책은 벽면 한가득하다. TV 사극에서도 조선의 왕가 이야기는 단골 소재여서 더는 조선에 관해 이야기할 거리가 남아있기는 할까 궁금할 정도이다. 그런데도 이 책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조선의 진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는 왜 금(金) 씨를 김(金) 씨로 부를까?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기 전 나라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이(李) 씨는 한자로 나무 목(木)자가 들어가는데 음양오행으로 따지면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순서이다. 나무는 흙을 이기고, 흙은 물을, 물은 불을, 불은 쇠를, 쇠는 나무를 이기는 이치이다. 이성계는 나무의 성질을 가진 이(李)씨가 쇠의 성질을 가진 금(金) 씨들에게 진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이성계는 전국의 금(金)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을 다 잡아들이라고 명했다. 하지만 조선에서 가장 많은 성이 금 씨였다.



궁여지책으로 나온 방안이 정부 차원의 맞춤법 개정안이었다. 그래서 쇠 금자를 성으로 쓸 때는 쓰기는 쇠 금으로 쓰되 발음은 김 씨로 하게 했다. 조선왕조 최대의 ‘창씨개명 사건’이었다.

궁궐 안에 화장실이 없다? 왕이나 왕족들은 즉석에서 화장실이 만들어졌었다. 그래서 정해진 공공화장실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궁은 궁녀나 병사 등 하루에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다. 신하들은 내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화장실로 만들어 이용했다.

이에 1880년대 초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던 김옥균이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내놓은 주장이 “똥을 개혁하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 서울 거리는 천지가 ‘똥 밭’이었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코를 막고 겨우 거리를 걸어 다닐 정도였다. 오죽하면 김옥균이 “서울의 비위생적인 환경부터 개선해야 신조선 건설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을까.

역사의 다른 이름은 ‘사람 살던 이야기’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역사를 결과 위주로 외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단일왕조로 최장기간 국가를 유지해 온 조선의 500년사를 우리는 교과서 몇 페이지로 압축해놓고 있다. 왕의 업적 나열이 전부인 교과서에서 재미를 찾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과 미국이 야구경기를 했다고 가정해보자. ‘한국이 4-2로 이겼다’는 결과만 봤을 때는 별 재미가 없다. 9회 초까지 양 팀이 엎치락뒤치락하다가 9회 말 한국이 3점짜리 끝내기 홈런으로 역전승했다는 경기 내용을 듣고 나면 흥미가 달라진다. 이렇게 과정과 사연이 생략된 채 결과만 기록된 내용은 어떠한 감흥도 주지 못한다.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장영실이 1441년 측우기를 발명했다’는 역사서에 기록된 사실이지만 재미는 없다. 장영실이 왜 측우기의 필요성을 느꼈는지,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 세계 최초의 우량계를 만들 수 있었는지 사연을 알면 이해가 쉽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왕가와 그들의 업적 위주가 아닌 조선 시대 사회상 전반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이성주 작가 특유의 입담으로 수백 년 전 아득한 이야기를 한 편의 콩트처럼 되살렸다.

지금도 해수욕장 옆에는 꼭 소나무 숲이 있는 이유를 아는가? 조선이 세계 최초로 ‘면 소재 방탄 재킷’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한때 조선은 동양 최대 준마 생산국이었다는 사실은?
 
키득거리면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조선 시대를 살았던 우리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그려진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는 늘 톱니바퀴처럼 맞닿아있다는 진리와 마주하게 된다. 역사는 고루한 과거가 아닌 현실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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