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마음을 읽는 책장]인생은 잎싹이처럼

어린 시절, 봄이 되면 언제나 병아리 아저씨가 교문 앞에 찾아왔었다. 종이상자에 빼곡하게 담겨 푸득거리는 병아리 중 색깔 예쁘고 팔팔한 놈으로 고르고 골라 집에 데려왔던 추억이 있다. 그렇게 사 온 병아리들은 이상하게도 전부 수컷이었다. 암컷은 더 좋은 곳으로 보내졌다고 했다. 병아리 아저씨가 말한 좋은 곳은 양계장이었다. 8살짜리 아이에게 ‘암탉은 매일 알 낳아야 해서 몽땅 생산공장에 갔다’고 솔직히 말해주기 곤란했을 테지….

황선미 작가가 쓴 <마당을 나온 암탉> (사진)이 생각난다. 여기에는 종이상자 속 병아리들의 누이, 여자친구들이 자라서 살아가는 양계장의 암탉이 등장한다. 양계장에 가본 적은 없어도 뉴스에서 양계장 소식은 종종 듣는다. 그때마다 물론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조류독감, 집단 폐사, 화재, 폭염, 동사 같은 사건 사고가 대부분이다. 뉴스에서 본 양계장 풍경은 A4 종이만한 철창 안에 마르고 힘없는 닭들이 들어있는 모습이다. 양계장 닭들은 하루종일 불이 꺼지지 않는 양계장에서 먹다 졸다 자기만 한다. 그렇게 평생 알만 낳다 죽는다. 그 암탉들은 철창 안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잎싹이라는 암탉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알을 품어 병아리를 보는 것이 꿈이었다. 더는 알을 낳지 못하는 폐계가 되어서야 버려지듯 닭장을 나올 수 있었다. 간신히 살아남지만, 마당에서 살던 동물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쫓겨난다. 저수지로 밀려난 잎싹이는 그곳에서 어미 잃은 청둥오리알을 자신의 알처럼 품어 초록 머리 새끼를 키워낸다. 생김새와 습성이 다른 청둥오리 새끼를 키워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극한 사랑으로 키워낸 새끼를 지키기 위해 족제비에게 제 목숨을 내주기까지 한다. 잎싹이는 죽고 나서야 비로소 하늘로 훨훨 날아오른다. 본디 날 수 있게끔 날개를 갖고 태어난 조류였건만 죽어서야 날개를 펼친다. 자유의지 없이 불쌍한 한평생이었어도 잎싹이의 마지막 모습이 그리 애처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꿈에 그리던 알을 품었고, 그 새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어주면서 잎싹이는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했으리라 믿는다.

잎싹이는 왜 양계장에서 마당으로, 다시 저수지로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했을까? 잎싹이를 잠시 사람으로 옮겨와 생각해봤다. 양계장은 철저하게 인간성이 말살된 착취와 억압의 공간이다. 과거 60년대 청계천 봉제 공장의 모습이 겹쳐진다.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고 생산도구로 여긴 노동환경이 산란계 양계장과 무엇이 다를까.



어렵사리 양계장을 탈출해도 당장 행복하지 않다. 잎싹이는 안전한 울타리가 있는 마당으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질서가 있었다. 대장 수탉 휘하에는 양계장에서 배불리 먹고 품지도 못할 알을 낳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난용종 암탉, 가족과 함께 살면서 혹시라도 누가 내 생활을 흐트러뜨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관상용 암탉, 날개를 다쳤어도 씩씩하게 사는 청둥오리, 안락한 삶에 안주하는 집오리떼, 그리고 천적인 족제비로부터 마당 친구들을 지켜주는 문지기 개가 있다. 야생에 익숙하지 않은 잎싹이는 안전한 소속감을 택했다. 갖은 굴욕을 이겨내며 마당 친구들과 동화되기를 원하지만, 그들은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다. 비단 마당의 동물 친구들 이야기일 뿐일까. 우리 사회에 가득한 차별과 혐오, 무시, 편견 역시 마당공동체의 폐쇄성만큼이나 견고하다.

잎싹이는 결국 마당이 제공하는 익숙한 소속감 대신 도전의 길을 가기로 한다. 그곳이 바로 저수지다. 밤낮으로 족제비가 공격해오는 그곳에서 잠잘 곳, 먹을 것을 알아서 찾아야 한다. 양계장에서 주는 먹이나 먹고 알이나 쑥쑥 낳아주면서 살면 얼마나 편할까. 그렇지만 잎싹이는 암탉으로서 더욱 주체적인 자기 삶을 살고 싶었다. 목 깃털이 빠지고 볼품없이 말랐지만, 자신의 삶과 새끼를 지키기 위해 마당을 박차고 나와 용감하게 야생에 맞선다. 자유롭게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안전함을 포기해야만 했다.

바람과 햇빛을 한껏 빨아들이고, 떨어진 뒤에는 썩어서 거름이 되고, 결국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는 아카시아나무 잎사귀처럼 뭔가를 하고 싶어 스스로 제 이름을 ‘잎싹’이라 짓고, 자유로운 삶을 찾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양계장과 안전한 마당을 나온 암탉. 우리는 과연 양계장 산란계인가, 잎싹이인가 깊이 고민하게 된다.


이소영 / 언론인, VA거주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