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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날개]사랑에 애타는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서정주: 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까지 과정이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잘 것 없는 국화꽃 한 송이일지라도, 그것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전우주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한 송이의 국화꽃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 영혼이 믿음의 꽃을 피우기 위해선 어떠한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내가 믿음 안에 산다는 것은 사랑에 애타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증거입니다. 나 하나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내려놓은 희생으로 내 안에 믿음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생명을 드린 은혜를 주셨기에 내 안에 믿음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내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하나님의 원수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나(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나(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주님은 나 하나 구원하고자 소쩍새와 천둥만을 울게 한 것이 아니라, 천지를 지으신 성자 하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애타는 사랑의 아버지와 같이 우셨습니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울었던 것 보다 예수님의 더 큰 고통과 눈물의 몸부림으로, 자신을 버리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필립얀시의 책에 나온 사랑에 애타는 아버지에 대한 글입니다. 열 다섯 살의 딸이 피임약을 쓰며 몇 일씩 집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부모가 갖가지 벌을 시도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새벽까지 거실 창문을 통해 딸아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성경에서 말하는 탕자의 아버지처럼 따뜻한 사랑으로 달려가 부둥켜 앉아주고 싶었으나 속에서 분이 치밀어 올랐다 합니다.
아버지는 그 딸아이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방황하는 딸에 대한 분노가 서서히 딸에 대한 걱정으로 변해갑니다.
딸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이 분노를 이겨 딸 아이가 집에 돌아 왔을 때, 그야말로 천하에 아무것도 바랄 게 없었으며 다만 그 애를 두 팔로 감싸 안고, 사랑해 주고 네가 잘 되기를 바란다고 말해주고 싶었을 뿐, 아버지는 사랑에 애타는 무력한 아버지였다고 고백합니다. 이 모습이 우리를 향한 사랑에 애타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내가 믿음 안에 산다는 것은 방황하는 딸 아이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증거입니다. 나 하나 구원하기 위해서 소쩍새와 천둥만을 울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은 하늘 보좌를 내려놓고 아버지의 사랑으로 내 안에 믿음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생명을 드린 은혜를 주셨기에 내 안에 믿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더 큰 고통과 눈물의 몸부림으로, 자신을 버리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나의 영혼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사랑에 애타는 하나님을 통해 내 안에 믿음이 드리워졌습니다.


김찬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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