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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을질'도 시작됐다

[LA중앙일보] 발행 2017/09/29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7/09/28 21:34

최근 한국서 '240번 버스' 논란이 뜨거웠다. 4살(후에 7살로 밝혀짐) 여자 아이가 정류장에 혼자 내렸고 뒤늦게 이를 안 엄마가 내려달라고 했지만, 버스기사가 그냥 내달렸다는 것이다. 같이 탄 한 승객이 이 같은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고, 일부 언론사들이 줄줄이 이어받아 보도했다. 시민들은 공분했고, 인터넷에서는 열받은 댓글이 꼬리를 물었다. 전문가랍시고 몇몇 인사들은 TV에 출연해 요즘 세태 진단을 하기 바빴다. 일부는 사법적 처리까지 들먹였다.

'갑을'로 양분하기 좋아하는 요즘 한국 사회에서 딱 좋은 먹잇감이 된 것이다. 힘겹게 사는 버스기사가 졸지에 갑이 됐다. 갑질을 확실하게 덧씌우기 위해서인지, 인터넷 글에는 버스기사가 애원하는 엄마에게 욕설까지 내뱉은 것으로 돼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달랐다.

이에 앞서 여배우 고 최진실씨의 딸 최준희양이 뜨거운 논란에 섰다. 비극적으로 부모를 잃은 최양은 같이 사는 외할머니 정모씨가 자신을 학대하고 가정폭력을 했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즉각 난리가 났다. 딸(최진실)의 많은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불쌍한 손녀를…하며 '대못질'이 시작됐다. '외할머니의 사랑'이 졸지에 비도덕한 갑질로 내몰렸다. 그러나 경찰은 외할머니의 학대 혐의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내사 종결했다. 중학교 2학년 소녀의 변화무쌍한 감정의 증폭과 보통의 외할머니 사랑을 짐작하면, 최양의 인터넷 글은 의심할 만한 것이었다. 투정 정도.

그러나 갑질 타령에 빠진 대한민국은 합리적 의심을 하지 못했다. 하기 싫었을 수 있다. 그래야 선악의 구분이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상대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면 선명성이 떨어진다.

달리 보면, 아예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수 있다. '검색 인간' 주제에 스마트하다며 스마트폰에 기대서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만을 다뤄왔기 때문이다. 머리 복잡하지 않게-요즘엔 이걸 스마트하다고 여긴다- 즉각적으로 수긍하거나 비난하려면 이성적 의심 과정은 깡그리 무시해야 한다. 마치 240번 버스 인터넷 기사를 아무 의심 없이 퍼날랐던 언론사들처럼 말이다.

다행히 '생각하는 기계' 덕분에 240번 버스기사는 누명을 벗었다. 버스 안팎 CCTV 장면이 공개됐다. 1. 아이가 혼자 내린 것을 즉각 알지 못한 엄마는 이미 버스가 중앙차선 쪽으로 들어선 뒤 버스기사에게 상황을 알렸다. 2. 버스와 인도 사이에는 차단물이 있었고 이어 곧바로 큰 사거리였다. 이런 곳에 내려줬다가는 다른 차량에 사고를 당할 개연성이 농후했다. 3. 아이가 내린 정류장과 그 다음 정류장 사이는 300미터가 안 됐다. 엄마는 뛰어갔고 곧 아이를 안았다.

'을질'도 시작됐다. 대기업 고위직을 망신주고, 별 넷 장군을 감옥으로 보내는 등 '을의 반격'이 세상을 순화시키고 있지만, 한쪽에서는 제 마음에 안 들면 멋대로 '을질' 폭격을 가하는 세태다. 묻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다. 인터넷으로 '선제공격' 한방이면 끝이다. 버스기사나 외할머니 같이 '을'인 사람도 '을질'에 당하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갑질과 을질 공방에 낀 사회는 에너지 블랙홀이 된다. 양측은 말초적으로 서로의 에너지를 빨아먹는다. 에너지 뱀파이어들은 자신이 매우 솔직하고 당당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남들은 여기저기 눈치나 보는 열등하고 비겁한 존재로 인식한다. 시각이나 논리가 매섭고 때론 후련하기 때문에 인기도 좋다. 하지만 '그 맛'에 주위에 어슬렁거렸다가는, 갑이든 을이든 다음 희생양이 되기 십상이다. 뱀파이어 특성상 '물면' 곧바로 전염되고, 그렇게 이어지는 사회는 정도 이상으로 피곤하고 아프다.

240번 버스기사와 외할머니는 눈물을 쏟으며 가슴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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