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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주눅 들지 말고 '참 아부' 할 때다

[LA중앙일보] 발행 2017/11/13 미주판 14면 기사입력 2017/11/12 16:11

지난주는 트럼프 대통령의 한중일 방문이 단연 화제였다. 트럼프를 맞이하는 한중일 3국의 모습을 지켜봤다. 비교도 해봤고, 공통점도 보았다. 정치적 의미와 성과를 떠나, 3국의 환영 행사는 3색이었다. 한국은 '작지만 예뻤다'. 중국은 자금성만큼이나 웅장했다. 일본은 특유의 세련미 없이 의외로 밋밋했다.

세 나라의 공통점은 '황제 대접'이었다. 현 국제정세를 생각할 때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쳐도, 가슴 저 밑바닥에서는 뜨거운 무언가가 치솟았다. 비굴하지는 않았지만 3국 모두 '아부'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아부(阿附)'는 언덕 '아'에 붙을 '부'다. 언덕에 붙는다(기댄다)는 말이다. 원뜻은 과히 나쁘지 않다. "비빌 언덕이 있어야지" 말에서 보듯 답답한 심정을 이야기할 때, 근저에는 아부가 들어있다. "아부할 때가 있어야지".

아부는 매우 부정적 뉘앙스다.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윗사람의 비위를 맞춘다'.

하지만 본뜻을 생각하면 사실 우리는 매일 아부하며 산다. 우리는 '언덕'이 필요하고, 누군가에게 '언덕'이기 때문이다. 사람 인(人)에서 보듯 인간은 모두 기대고 붙어 살 수밖에 없다.

아부는 다른 말도 많다. 칭찬, 격려, 존경, 배려, 사랑 등이다. 자녀에게, 친구·동료에게, 상사에게, 부하에게, 부모에게, 연인·배우자에게 여러 다른 말로 아부하며 살고 있다.

이렇게 매일 사용하지만 사실 아부는 매우 복잡한 관념이자 기술이다. "우리 아들 나중에 노벨상 받는 과학자 되겠어." 아부이자 격려고, 칭찬이자 거짓말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권력의 거미줄에 놓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선생님과 힘이 센 친구가 있다. 권력과 돈이 있는 친구, 예쁜 친구가 얽혀 있다. '아부란 종속적인 상황에 대한 지나친 학습의 결과'라고 사회학자 에드워드 존스는 간파했다. 평생에 걸친 사회화의 결과라서 매일 진행형이라는 말이리라.

그렇다면 배워야 한다. 그런데 가르쳐 주는 선배나 학교도 없다. 고작 배운다는 것이 역겨운 노골적 아부를 보며 '저러지 말자'고 반면교사 삼을 때 정도다.

서양에서는 품위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말에 색을 입히는 수사학(rhetoric)을 배운다. 요즘 PC(Political Correctness)로 말하는 식이다. 보험외판원이 보험설계사 되고, 식모가 가사도우미, 노인을 시니어로 표현한다. 둘 다 노골적을 지양하는 것이다.

권력의 속내를 속속 짚어낸 마키아벨리도 '군주론' 헌정글에서 당대 최고의 권력자이자 재산가인 로렌조 드 메디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시대가 위인을 찾고 있는데, 오직 로렌조만이 시대의 공백을 채울 수 있을 뿐"이라고 돌려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누군가 질문했을 때, 마이크를 손으로 가리고 상대방을 바라본다. '당신의 의견을 경청하겠다'는 뜻의 온몸 아부다.

자신만 생각하는 파괴적 아부는 지도자의 판단을 흐리고 조직을 썩게 한다. 반면 창조적 아부는 상대를 존중하는 법을 가르치면서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한다. 이런 아부는 축복인 셈이다. 사람과 조직은 비판을 먹고 성장하기도 하지만, 축복을 먹을 때 결정적으로 자란다.

연말, 아부의 계절이다. 수많은 모임은 권력 거미줄의 축소판. 품격있는 아부는 마치 웃음처럼 관계와 관계를 즐겁고 부드럽게 하고 창조적 기운을 북돋는다. 노골적이거나 남발하면 주변을 찡그리게 할 뿐이다. 못 배워서 못한다면 차라리 겸손하자. 겸손은 자신을 낮춤으로써 상대방을 높이는 아부의 다른 표현이다. 주눅 들지 말고 제대로 '참 아부'를 배우고 할 때다.

다른 이야기. 최고의 아부는 무엇인가. 셰익스피어가 '줄리어스 시저'에서 답한다. "시저, 당신은 아부꾼을 몹시 싫어하시죠?" "그럼! 물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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