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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보이스] "넌 한국인인데 어떻게 그걸 몰라?"

미국에 처음 와서 영어학원을 다니며 사귀게 된 절친이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온 그 친구의 이름은 사라이.

그 친구는 스피킹이 무척 자연스러웠고 나는 문법에 자신이 있었다. 자존심이 센 그 친구나 나나 항상 서로의 점수를 가지고 놀리며 서로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기도 하고 경쟁도 하면서 보냈다.

여느 때와 같이 글쓰기 시간에 선생님이 과제를 내주셨다. 선생님은 항상 흥미로운 주제로 에세이 과제를 내주셨기 때문에 글쓰기를 싫어했던 나는 그나마 그 수업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100억 달러로 어떤 나라의 노숙자를 모두 구제해 줄 수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 라는 과제를 두바이에서 온 친구와 글쓰기 파트너가 되어 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 서로의 나라를 얘기하던 중, 한국을 너무나 못사는 나라처럼 얘기하며 장난치길래 나는 노숙자뿐만 아니라 100억 달러면 너희 나라 다 먹여 살릴 수도 있겠다! 이랬다. 그런데 그가 진지한 얼굴로 '우리나라는 노숙자가 하나도 없어'라고 말해 놀란 나머지 하루종일 두바이를 검색해서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여러 주제로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시키던 선생님은 어느 날 나에게 잊지 못할 창피함을 선사하셨다.

'오늘의 주제: 국적이 다른 친구와 파트너를 맺어 그 나라의 대통령에 대해서 에세이를 쓰시오.'

내 친구 사라이와 나는 리서치를 시작했고 그 친구는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의 공과를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곧 이어 그 친구는 나에게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OOO대통령은 왜 당선이 되었는데? 너희는 재선이 가능하니? 북한처럼 한 명이 당선되면 죽을 때까지 하는 거니? 그럼 남북이 갈라지기 전에는 한 명의 대통령? 왜 갈라졌어? 한국전쟁은 언제 왜 일어난 거야?

어…그게 언제 일어났냐면…나의 대답을 안달나게 기다리던 친구의 얼굴에 실망감을 안겨 주고 싶지 않았던 나는 저멀리 앉아 있던 한국 학생에게 재빨리 오빠! 6.25가 언제 끝났지? 오빠는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분명히 알겠지, 라고 기대한 나는 "빨리 오빠 빨리 말해줘!" 다그쳤다. 하지만 그 순간 친구는 눈치챘는지 "너희들 모르지?" "너 한국인인 거 확실해?" 라며 놀림 섞인 말투로 나를 무안케 했다.

나는 수치심에 못 이겨 말도 안 되는 유치한 변명을 지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수학이랑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그래! 하지만 그 친구는 "그게 무슨 상관인데? 프랑스 사람이든 브라질 사람이든 수학이랑 영어는 할 줄 알아. 근데 한국 역사는 모를 수 있잖아. 근데 넌 한국인인데 한국 역사를 모르면 어떡해?", "하지만 나만 역사 잘 모르는거 아니야! 요즘 내 나이 또래 다른 친구들도 역사 잘 몰라!", "그럼 다른 한국 친구들도 다 실망거리들인거네?" 이로써 그 친구에게 완패당했다.

한마디도 반박할 수 없었던 것에 분하고, 그 친구가 너무나 맞는 말을 하는 것에 또 분하고, 여태까지 왜 역사를 모르면 창피한 건지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은 어른들 때문에 또 분하여 그날 밤 잠을 잘 수 없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한국에 대한 어떠한 질문도 포기하고 혼자 리서치를 시작하였고 나의 머리는 하얗게 변했다.

미국에선 어느 나라 출신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저는 한국인 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그날 받은 내 창피함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날의 그 상황을 돌아보자면, 저는 우리 엄마 딸은 맞는데요, 저희 엄마가 누군지는 몰라요, 저희 엄마는 형제가 있는데 만날 수 없대요, 근데 왜 못 만나는지 모르고 사실 관심도 없어요. 그런데 저는 엄마를 매우 사랑해요. 대충 엄마는 국가이고 나는 딸이라는 국적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그 이후로는 왜 엄마가 형제를 잃은 아픔을 겪었는지조차도 모르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역설적인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친구도 단번에 내가 얼마나 모순적이고 무식한 사람이었는지를 단번에 알아차린 게 아니었을까? 이런 사연이 지금 내가 열심히 역사 공부 동호회 참석하게된 동기가 됐다.

아직도 내 얼굴을 붉게 만든 그 친구의 목소리가 귓속을 맴돈다 "넌 한국인인데 어떻게 그걸 몰라?"


김지혜 /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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