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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276> 중남미 독립사2

원래 프랑스의 숙적인 영국은 포르투갈과 각별한 사이였다.

많은 영국 자본이 포르투갈에 투자되고 포르투갈 또한 프랑스 몰래 영국 상선의 기항을 허가하여 거래를 계속하고 있었다.

1807년 포르투갈을 응징하기로 결심한 나폴레옹은 스페인-포르투갈 원정군을 일으킨다. 1808년 에스빠냐의 수도 마드릿(Madrid)에 입성한 나폴레옹은 황제 까를로스4세(1748~1819:재위 1788~1808)를 폐위시키고 자기 형인 조세프를 황위에 앉힌 다음 리스본으로 진격하여 포르투갈마저 점령한다. 당시 유럽의 육전에서 나폴레옹은 무적이었다.

포르투갈 왕실은 영국함대의 선편을 이용 황급히 브라질로 도피했다가 나중에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폐위된 스페인의 까를로스4세는 스페인 그리고 중남미 전체 식민지의 황제였는데 폐위되는 바람에 스페인과 중남미와의 연결이 끊어져버린 것이다.



황제가 폐위되고 적국에 의하여 꼭두각시가 황제로 즉위하자 평소 본국의 식민지 차별 정책에 불만을 갖고 있던 끄리오요(criollo. 중남미 태생의 스페인계 백인) 계층의 독립 움직임이 노골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독립 목소리가 커지고 주둔군인 스페인군과 반군의 충돌이 빈번해지는데 본국에서는 진압을 위한 증원군을 파견할 입장도 못되고 증원군을 싣고 갈 전함들이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거의 박살난 형편이라 반군의 도전을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스페인 주둔군의 전력 약화는 중남미 각국이 쉽사리 독립하도록 도와준 꼴이 되고 말았으며 중남미 10여 개국이 단 10여 년만에 한꺼번에 독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남미의 독립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은 세명이다. 순서대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시몬 볼리바르(Simon Bolivar 1783-1830) 산 마르틴(San Martin 1778-185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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