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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네트워크] 경제학자들의 직무유기

홍승일 /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홍승일 /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LA중앙일보] 발행 2018/09/12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8/09/11 19:59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오피스텔 건물 4층에 오르면 승강기에서 내리자마자 '서울사회경제연구소'라는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도 생소한 이 자그마한 연구소가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산실이다. 연구소 창립자인 변형윤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의 아호를 딴 세칭 학현(學峴)학파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문재인 경제 철학의 설계자인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전 경제수석)이 이 원로 진보학자를 사사했다. 전임 청장의 경질 파문 속에 부임한 강신욱 통계청장, 장지상 산업연구원장, 원승연 금융감독원 부원장 등이 이곳 출신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학현과의 유대가 깊다.

이들은 해외유학을 많이 갔던 1980년 대에 서울대에 남아 경제학 박사학위까지 마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이어 10년 만에 진보 경제정책의 싱크탱크로 다시금 부상했다.

홍 위원장을 비롯해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 김현철 경제보좌관은 소득주도 성장의 일환인 최저임금 급격 인상이 자영업계와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자 정책홍보에 뒤늦게 뛰어들어 언론사 문턱을 분주히 드나들고 있다. 그에 비하면 경제학계, 특히 시장원리를 중시하는 주류(主流) 경제학계의 분위기는 잠잠한 편이다. 신문 기고나 방송 좌담을 통한 비판 등 파편적 개인 활동만 간간이 눈에 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소득주도 성장 정책 점검 성격의 국제심포지엄을 6월 개최한 적은 있지만, 정책 시행 1년 넘도록 민간 학계에서 이에 관한 학술대회 한 번 번듯하게 열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경제이론에 반하는 요설(妖說). 국민은 생살 찢기는 실험실 쥐 신세."(이병태 카이스트 교수) "소득주도 성장은 지속되어야 한다. 이런 경제실험이 얼마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국민이 깨달을 수 있도록."(현진권 전 자유경제원장) 같은 저주스런 비판들이 공론의 장에서 알맹이 있는 학문적 논쟁으로 승화하지 못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처럼 처음 해보는 정책, 그르칠 경우 성장과 고용 면에서 막대한 국가적 비용을 치러야 할 정책을 시행 초기에 면밀히 검증하고 바른길로 이끄는 것이 경제학의 임무"(김병연 서울대 교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경제학 동네는 논쟁 실종이다. 1970년대 미국 케인스학파 대 시카고학파의 통화주의 논쟁, 2008년 미국의 양적 완화 정책을 둘러싼 폴 크루그먼과 그레고리 맨큐의 논쟁처럼 국익을 위한 최고 지성들의 날선 공방이 절실하다.

주로 미국에서 박사를 딴 해외유학파 경제학자들이 명문대 교수 임용, 테뉴어 획득에 목매느라 해외 연구저널 논문 게재에 몰두하는 동안 상당수 국내 박사인 서울사회경제연구소 학자들은 25년 넘게 매월 한 번씩 한국경제 세미나를 이어왔다.

경제학계가 풀어줄 숙제는 많다. "소득주도 성장은 이론적으로 무의미한 동어반복"(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이라는 비판, 실제적으로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척박한 비즈니스 환경을 도외시한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정책인 데다 과속 페달까지 밟는다는 악평까지 나온다.

여건을 돌보지 않고 최저임금 인상을 강행했다면 무책임한 정부이고, 이를 예상하지 못했다면 무능한 정부다. 과연 성장 정책인지, 아니면 분배 정책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미사여구 정치구호인지도 규명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성장과 고용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 수치로 따져보는 실증 작업은 공허한 말싸움을 잠재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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