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100년전 네브라스카에서도 독립운동"

1900년대 초 네브라스카의 커니 군사학교 학생들. 명단에서 박용만(Park Y. M.) 지사의 이름이 확인된다. 미국식 군사 교육을 받은 그는 이곳에 한인소년병학교를 설립, 1912년 13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The Daily Nebraskan]

1900년대 초 네브라스카의 커니 군사학교 학생들. 명단에서 박용만(Park Y. M.) 지사의 이름이 확인된다. 미국식 군사 교육을 받은 그는 이곳에 한인소년병학교를 설립, 1912년 13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The Daily Nebraskan]

한인 여성 공무원이 사료 추적
현지 언론 인터뷰로 주류 소개
박용만·박철후·정한경 등
UNL 동문 독립지사들 활약상
한인소년병학교·임정 지원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중부 네브라스카의 한 한인 여성 공무원이 현지 주민들에게는 생소하지만 네브라스카에서 실제 일어났던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주류 언론에 소개해 화제다.

'데일리 네브라스칸(Daily Nebraskan)'은 네브라스카 주정부에서 근무하는 한인 김도희 씨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네브라스카 현지에서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벌였던 선열들의 활약상을 15일 보도했다.

네브라스카 링컨 대학교(UNL)를 졸업한 김씨는 한세기 전 한인 동문으로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젊음을 바쳤던 박용만, 박철후, 정한경(헨리 정) 독립지사의 기록을 발견했다. 또 동문은 아니지만 인근 헤이스팅스 고등학교를 졸업한 독립유공자로서 유한양행 창업주이기도 한 유일한 박사도 찾아냈다.



그는 "선열들을 찾은 것은 완전히 우연이었다"며 "20세기 초 한인 동문 선배들이 일제의 탄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후대 한인들이 살고 있는 이곳에서 투쟁했다는 사실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고 감탄했다.

이후 개인적인 연구를 이어간 그는 여러가지 자료와 사진을 찾아냈고 당시 많은 젊은 한인들이 네브라스카의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닌 사실을 알아냈다. 실제 박용만 지사 등 젊은 한인들은 당시 네브라스카에서 한국으로 파송된 선교단에 의해 이곳에 정착했다.

일제에 의한 왕권 약화, 군대 해산 등 수모를 겪는 조국의 현실에 무력감을 느꼈던 젊은이들은 UNL의 ROTC 프로그램에서 힘과 매력을 느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용맹을 떨친 존 퍼싱 장군을 배출한 UNL을 나온 박용만 등은 이곳에 한인소년병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이와 관련, 김씨는 "한인소년병학교는 조지 워싱턴의 민병대(minutemen)와 같은 개념으로 일제에 맞서 싸우는 한국의 광복군이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박용만과 정한경은 네브라스카 현지에서 조국의 독립과 한국인들의 교육, 기독교 선교 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원자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특히 정한경은 1919년 3.1운동이 있기 한달 전 대한인국민회 임시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임돼 독립청원서를 당시 윌슨 대통령에 제출하기도 했으며 그해 9월에는 재미교포의 애국성금을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박철후는 커니에 있는 네브라스카주 노멀 스쿨을 우등생으로 나온 인재로 이후 서울로 돌아가 신학대 교수직을 맡았지만 다른 애국자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책에 이들의 이름은 크게 실리지 못했다고 신문을 전했다.

김씨는 "네브라스카와 미국을 무대로 독립운동을 벌였던 선열들에 대한 연구가 아직도 부족한 것은 아쉬운 일"이라며 "이들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비추는 등불 같은 존재"라고 강조했다.


류정일 기자 ryu.jeongil@koreadaily.com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