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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달팽이를 놓아주다

막내 손자 이삭이 목 놓아 울었다. 다섯 살을 갓 넘긴 아이. 너무 울어서 눈자위가 부었다.

전에는 달팽이가 너무 많아, 보이는 대로 잡아내고 정기적으로 약도 뿌렸다. 뒷마당에서 큰 포도알만 한 달팽이를 잡아다가 둘째와 이삭에게 보였다. "이유! 징그러워" 하며 뒤로 물러선다. "아냐! 너무 귀여워! 자세히 보렴!" 집게 손가락에 잡힌 달팽이를 내 손등에 얹었다. 움츠렸던 달팽이가 천천히 더듬이를 내밀고 길게 기어나와 앞으로 기어간다. 두 녀석이 얼굴을 디밀고 초롱초롱한 눈길로 관찰하며 질문이 많아진다.

"네 손바닥에 놓아볼래?" 둘 다 펄쩍 물러나며 싫단다. 난 내 손바닥을 혀로 살짝 핥으며 "그냥 이런 느낌이야!" 둘째가 먼저 하니 이삭도 해보겠다고 나서며 고개를 돌린 채 눈을 꼭 감고 손바닥을 내민다. 온몸에 힘을 주어 파르르 떨며 높은 소리를 지른다. 한 번 하더니 팔에도 놓아보고 종아리에도 놓아보며 짜릿한 기쁨의 교감을 주고 받으며 두 녀석이 깔깔댄다.

"이제 그만! 얘는 아주 겁이 많고 약해. 이제 여기다가 넣어서 쉬게 하자." 맑은 유리병에 물을 한 수저 붓고 양상추를 조금 깔고 넣어주었다. 다음날 아침, 밤 동안에 양상추를 뜯어먹은 자리와 까만 실밥 같은 똥을 눈 것을 확인했다.



이삭이 학교에서 돌아오자 먼저 달팽이의 안부를 살핀다. "아 이를 어쩌나!" 달팽이가 없어졌다. 이삭의 실망이 컸다. 어딘가에 기어들어가 숨어있을 테니 할머니가 잘 찾아보겠다고 달랬다. 다음날 저녁, 둘째가 온 집안에 들리도록 큰 소리를 질렀다. "달팽이 찾았다!" 이삭의 상심을 알고 있던 온 식구가 반가워하며 모여들었다. 제 집 속에 꽁꽁 숨은 달팽이는 나오지 않았다. 제 어미가 "말라서 죽었다. 내다버리자"라고 한다. 죽었다는 말에 그만 이삭의 슬픔은 무너져내렸다.

한 시간쯤 뒤 병 속의 달팽이를 살피다가 둘째가 크게 소리쳤다. "이삭! 이삭! 달팽이가 살았어!" 난감한 슬픔에 물들었던 온 식구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달팽이가 느리게 천천히 나오고 있었다. 무슨 기적이라도 일어난 양 모두가 웃으며 기뻐하고 안도했다.

"이삭!, 얘는 지금 많이 지치고 또 엄청 아플 거야! 그리고 얘는 이 병 속을 좋아하지 않아, 그러니까 도망갔었지! 여기는 감옥 같을 거야! 우리 밖에 가서 놓아주자!" 이삭이 조금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삭과 함께 스프링클러가 막 끝난 젖은 푸른 잎 위에 놓으니 달팽이가 길게 몸을 늘이고 활발하게 기어가기 시작했다.

"저 봐라! 참 좋아하는구나! 그렇지?" "야~아!" 달팽이의 재롱을 즐기며 갖는 것보다, 놓아주면서 오히려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을 본다. 나라를 위해서 용맹을 떨쳐야 할 군인이 되고 싶은 이삭의 이상과 달팽이의 죽음을 애달파하는 여린 잔정의 커다란 간극, 그리고 이삭의 생애에 앞으로도 수없이 만날 '애별리고(愛別離苦)'를 꿋꿋이 잘 감당해 내라고 축복하며 달팽이의 힘찬 전진으로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민유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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