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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포럼] 창백하고 푸른 점, 지구에서 사는 지혜

우주항공주국(NASA)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무인탐사선 보이저 1호는 2019년 12월 8일 아침 8시 25분 현재 약 221억㎞ 거리를 항행하고 있다. 보이저 1호는 인간이 만든 물체로 태양계를 최초로 벗어났고, 지구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100억의 1조배 쯤 되는 별이 있다는 신비로운 우주를 가다가 외계 생명체를 만나면 사용할 한국어 인사말 ‘안녕하세요’를 비롯해 지구인의 정보를 지니고 있다.

1977년 9월 5일에 발사되어 시속 6만㎞의 속도로 항행을 하고 있는 이 탐사의 주요 기획자인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은 보이저가 토성을 지나기 전에 카메라의 렌즈를 반대로 돌려 지구를 촬영하자는 엉뚱한 제안을 했다. 물론 채택되지 못했다. 임무가 아니었고, 태양열에 렌즈가 녹기라도 하여 탐사가 무산되면 재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 온 책임자는 그 아이디어를 수용한다. 명왕성 근처에서 찍은 사진 속의 지구는 한낱 티끌이었다. 세이건은 그런 지구를 ‘창백하고 푸른 점’(pale blue dot)라고 했다. 인간과 세상의 흥망성쇠가 먼지 같은 지구 위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발상의 전환으로 확인하게 된 자신(지구)의 모습에서 인간의 오만이 얼마나 어리석으며, 인간은 겸손하고 공생해야 하는 존재라는 지혜를 배우는 순간이었다.

1970년 12월 7일 비에 젖은 폴란드 바르샤바의 전몰자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은 한 사내. 폴란드인 8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나치의 만행에 대해 사과하는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였다. 극악한 죄업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독일 정치 지도자들의 행동하는 반성은 감동을 낳았다. 이런 진정성이 쌓여 분단된 전범국 독일의 통일을 가능하게 한 힘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잘못을 저지르지만 잘못을 뉘우칠 줄도 아는 유일한 동물, 사피엔스의 지혜였다.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에 의해 1996년 2월에 실행된 ‘진실과 화해 위원회’도 인류의 양식을 높이는 지혜였다. 위원회의 목적은 백인들이 남아프리카를 점령한 후 340년 동안 흑인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악독한 학살, 암살, 납치, 고문, 투옥에 대한 과거 청산 작업이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을 통해 국민 앞에 폭로되는 수치심을 겪는 방법으로) 진상은 철저히 규명하되 법적인 책임은 묻지 않고 사면”(‘만델라 자서전’) 한다는 방침은 ‘잔인무도한 범죄자들을 법정에 세워 왜 정의를 세우지 않느냐’는 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위원회의 의장인 투투 주교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의 늪은 흑과 백이 함께 헤쳐 나가야만 가능하도록 흑과 백의 손은 하나의 사슬에 묶여 있다고 설득했다. 27년의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만델라의 ‘망각하지는 않되 용서하는’ 정신, 진실과 화해를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불쏘시개로 삼겠다는 리더십이 만든 지혜였다.

또 한 해가 지나간다. 역사가 선물한 지혜(겸손과 공생, 진정한 반성, 미래를 위한 진실과 화해)와는 반대로 가는 정치 때문에 바람 잘 날 없는 나날이었다. 내로남불의 억지, 상대의 티끌마저 들추면서 자신의 대들보는 강변하는 폭력적 언행으로 우리 공동체는 내편 네 편으로 쪼개지고 불신과 불통의 벽은 높아만 가고 있다. 벽을 깨는 소통의 지혜와 행동이 시급하다.


김정기 / 한양대 신문방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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