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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배우는 마르띤의 스패니시 생활회화 <244>링컨의 흑인노예 해방

미국 흑인노예 해방의 영웅 에이브러햄 링컨(16대 대통령: 재임 1861-1865)의 발언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인 1858년 스티븐 더글러스와 벌인 논쟁의 기록이다.

"나는 어떤 식으로도 백인과 흑인의 사회적 정치적 평등을 도모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며 한 적도 없었다고 말하겠습니다. 또 흑인에게 투표권이나 배심원 자격을 주자고 한 적도 공무원 임용 자격을 주자고 한 적도 백인과의 혼인을 허용하자고 한 적도 없었으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백인종과 흑인종 사이에는 신체적 차이가 있으며 그 때문에 두 인종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평등하게 사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링컨은 노예 해방주의자가 아니다. 흑인노예 해방(1863년1월1일)을 결정한 것은 흑인의 자유를 위한 것이 아니고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한 상황에서 남부군의 분열을 노리고 북부군의 전력 증강을 위한 방편이었다.

노예 해방 선포 후 남부에서 많은 흑인이 탈출하여 북부로 왔고 많은 흑인이 북부군에 지원해서 용감히 싸웠다. 북군의 연인원 병력 200만명 중 18만5000명이 흑인이었고 그 중 3만8000명이 전사했다.



1861년 4월에 시작돼 1865년 4월에 끝난 남북전쟁은 미대륙 사상 최대의 전쟁이다. 남북 양측에서 연 인원 300만명 이상의 병력을 투입하여 60여 만명이 전사하고 40만명 이상의 포로가 발생했으며 큰 전투에는 양측에서 수십만 명의 병력을 투입한 대전쟁이다. 당시 북부의 인구는 2000만명이었고 남부의 인구는 900만명 정도로 지금 인구의 10분의 1 수준이었으니 인구 비례로 보면 무려 600여 만명이 전사한 셈이다.

전사자가 이렇게 많았던 이유는 머스킷 총이 퇴장하고 성능이 10배나 뛰어난 라이플 소총의 개발 덕이다.

▶문의: (213) 381-0041 www.martinspanishcollege@gmail.com

▶웹사이트:www.martinspanishcollege.com

백지원(언어학자/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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