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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내 고향…보여줄 건 노을 뿐"

변산
감독: 이준익
주연: 박정민, 김고은
장르: 드라마


"복수하려면 아직 멀었는디, 아버지 정말 가는 거요."

평생을 건달로 살다 임종을 바로 앞둔 아버지(장한선)와 아들 학수(박정민)가 주고받는 부자간의 마지막 대화이다. 서울에서 무명의 래퍼로 활동 중인 학수는 오래 전 가정을 버리고 간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변산에 내려왔다가 그 순간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다. 이들의 대화에 등장하는 '복수'란 말은 아들 학수가 아버지에게 품고 있는 증오심을 의미한다.

학수는 그다지 정감이 가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는 늘 투덜대기만 한다. 고향 변산을 뒤로한 채 서울에 올라와 열심히 살아 보려 안간힘을 쓰지만 주변 환경은 냉담하기만 하다. 래퍼로서의 재능이 인정되어도 경연대회에서 초반 탈락만 벌써 6년째이다. 꼬일 대로 꼬여 더 꼬일 것도 없어 보인다. 참으로 되는 게 없는 이 시대 청년들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래퍼의 솔직한 내면 고백과 과거사의 아픈 기억들이 점차 상기되면서 우리는 학수의 투덜댐이 과거의 지겨운 결핍에서 벗어나려는 피해의식의 몸부림이라는 걸 감지하게 된다.



두 편의 시대극 '동주', '박열'에 이어 이번에는 이준익 감독이 현대극을 들고 찾아왔다. 가슴 아프고 진지한 이전 영화들의 연출 톤이 '청춘 3부작'의 마지막 영화 '변산'에서는 코믹으로 전환된다. 2018년 최고 기대작의 면모를 충분히 갖춘 유쾌하고 즐거운 영화이다.

영화 '변산'은 전라북도 부안군에 위치한 변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학수에게는 도피하고만 싶었던, 그래서 애써 잊으려 했던 고향 변산. 어릴 적 가족을 내팽개치고 떠났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 평생 고생만 하다 서럽게 돌아가신 어머니, 실패한 첫사랑의 기억이 있는 곳이다.

영화는 학수 가족의 슬프고 불행한 흑역사를 얘기하고 있지만 대체로 적절한 타이밍의 웃음으로 귀결된다. 감독이 의도한 촌스러움의 미학과 젊음을 상징하는 힙합이 교묘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는 1년여를 랩 연습에 매달린 배우 박정민의 힘이 크다.

무엇보다도 박정민의 털털한 연기가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참으로 다부지고 빛나는 배우이다. 박정민은 예측불허의 코믹한 일화들 속에서도 학수의 내면에 진하게 깔려있는 인간미를 끝까지 붙들고 간다. 몰입의 극치를 보여주는 배우 박정민은 '그것만이 내세상'에서 직접 보여주었던 피아노 연주에 이어 이번엔 래퍼로 변신, 그의 음악적 재능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빛나는 코믹연기의 주인공은 김고은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학수를 짝사랑하며 그 사랑을 소중히 간직하고 키워 작가가 된 시골처녀 선미 역을 통해 김고은은 또 한번 우리에게 '재발견'의 의미를 실감케 한다. 그녀의 연기 스펙트럼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 밖에 없네."

폐항 변산의 노을은 이 영화의 키워드이다. 선미가 전하는, 이 영화의 진정한 메타포이다. 선미는 고등학교 시절 학수가 래퍼 노트에 남긴 문구에서 본 노을을 사랑으로 승화시킨,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이다. 선미는 실의에 찬 학수를 통해 노을빛을 처음 보았고 그 안에서 사랑의 위대한 힘을 키워오고 있었다. 짝사랑 했던 남자 학수에게서 받은 상처를 통해 터득한 그녀의 성숙함이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학수의 상처를 치유한다. '첫사랑은 이루어지 못함으로서 이루어진 것이다. 첫사랑은 그를 사랑한 내 마음을 사랑한 것이다'라는 선미의 독백이 감동적이다.

"언제까지 평생 피해 다닐 것이여? 니는 정면을 안봐. 값나가게 살진 못해도 후지게 살지는 말아"

선미가 학수에게 던지고 가는 이 돌직구 한마디에 학수는 처음으로 선미의 사랑을 물씬 느낀다. 선미의 애틋한 사랑과 변산의 가난한 노을빛의 서정이 접합되면서 '투덜이 래퍼' 학수의 마음이 움직여지고 그의 가슴에 사랑이 다시 움 트인다.

에필로그의 춤파티는 배우들의 케미를 한 장면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값진 보너스이다. 인간미 넘치는 감동 드라마 '변산'에는 또 다른 명장면들이 숨겨져 있다.

곧 죽음을 눈 앞에 둔 노쇠한 건달 역을 웃프게 연기한 장항선에게도 찬사를 보낸다. 그의 연기에는 이제 노 배우의 관록이 물씬 배어있다.


김정·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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