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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아득한 성자' 몸 벗으시다

"그날 저녁은 유별나게 물이 붉다붉다 싶더니만/ 밀물 때나 썰물 때나 파도 위에 떠 살던/ 그 늙은 어부가 그만 다음날은 보이지 않네"(오현 스님 '인천만 낙조')

설악산 신흥사 조실 무산(법명) 조오현(속명, 필명) 스님이 5월26일 입적했다. 법랍 60세, 세수 87세다.

언론매체들은 '이 시대 마지막 도인이 떠났다' '아득한 경지에서 유유자적 격외가 부르던 무산 스님 입적' 등의 제호 아래, 스님의 입적을 안타까워하며 보도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나 문재인 대통령도 자신의 페이스 북에 스님의 갑작스러운 입적에 애도를 표했다.



그 글에서 문대통령은 2016년 2월4일 '아득한 성자'와 '인천만 낙조'라는 오현 스님의 한글 선시가 너무 좋아 페이스 북에 올린 적이 있다고 했다.

이어 '스님께선 서울 나들이 때 매번 저를 불러 막걸리 잔을 건네시기도 하고, 묵직한 화두와 함께 시자 몰래 슬쩍 주머니에 용돈을 찔러주시기도 했다'며, '언제 청와대 구경도 시켜드리고, 이제는 제가 막걸리도 드리고 용돈도 한번 드려야지 했는데' 스님의 입적 소식에 '아뿔싸! 탄식이 절로 나왔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스님은 '가장 승려답지 않으면서 가장 승려다운 시인'이었다. 문단에선 수행을 통한 깨달음의 경지를 파격과 전복의 언어로 표출해, 아귀다툼하는 세속을 들었다 놓았다 한 '천재시인'으로 스님을 평가한다.

스님은 1989년 강원도 낙산사에서 득도했다. 그때의 오도송(깨달음의 노래)인 '파도' 전문이다.

"밤늦도록 책을 읽다가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먼 바다 울음소리를 듣노라면/ 천경(千經) 만론(萬論)이 모두 바람에 이는 파도란다"

특히 스님의 선시 중 '아지랑이'란 제목의 시는 한국의 중ㆍ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아지랑이"

아래의 선시는 2005년 '세계평화시인대회' 만찬장에서 오현 스님이 즉흥적으로 읊으신 것이다. 함께 참석했던 노벨문학상 수상자(1986년) 월레 소잉카 시인은 '이 시 하나에 평화라는 우리의 주제가 다 압축되어 있다'며 '대단한 인물'이라고 경탄했다고 한다.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적멸을 위하여')

스님은 10여 년 전부터 당신의 두개골을 스캔한 실물 크기의 두상을 옆에 두고 계셨다 한다. 몇 주 동안 곡기를 마다하시다 저녁놀이 유별나게 붉다싶던 날, 스님은 세상을 놓아 버리고 훠이훠이 적멸에 드셨다. 그 해골(?)과 법(法)사리인 임종게만을 남긴 채,

"천방지축 기고만장 허장성세로 살다 보니/ 온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대자유인'의 진면목이다.

musagusa@naver.com


박재욱 / 나란다 불교아카데미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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