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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소통의 단절이 만든 고독

소통의 단절이 만든 고독

야자수 어깨에서

얼었던 어둠 몇 점

투두둑, 떨어진다.



밤과 기나긴 정사를 끝낸

저 흰 가로등

뿌연 담배 연기 내 뿜으며

길가에 기대어 서 있고

돌산에 떠오른 빛 한 다발

사뿐히 어둠이 떨어진

나무 어깨에 앉았다.

틈이 낳은

새 침묵이다.

-추은진의 ‘틈’ (‘미주문학’ 2010년 봄호)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틈이 있다. 이 ‘사이’나 ‘틈’은 존재의 개별성을 특징짓는 가장 뚜렷한 것이다. 사이나 틈이 없으면 그 존재는 같은 존재물이다. 모든 존재는 개별성, 독립성을 원하지만 동시에 너와 나의 틈이 메워지기를 꿈꾼다. 홀로 선 모든 존재는 같이 섬을 바란다.

이런 꿈꾸기가 생기는 까닭은 몇 가지 있다. 우선 외로움 때문이다. 인간의 외로움은 홀로 선 이의 당당함이나 도도한 인품을 때로 망가뜨릴 수 있을 정도이다. 홀로 섬의 기쁨과 똑같이 하나됨의 즐거움을 원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청춘남녀가 아니라도 다정한 연인이나 부부를 바라보는 외톨이의 시선에는 분명 부러움이 묻어있다.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길에는 즐거움, 쾌락이라는 감정이 개입한다.

위 시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3행은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밤이 끝나고 새벽이 오는 시간이다. 본문에 해당하는 둘째 부분의 핵심어는 ‘기나긴 정사’이다. 인간의 생식본능은 홀로섬에서 하나됨의 길로 내모는 중요한 원인이다. 나와 너는 늘 하나됨을 바라는 욕구에 시달린다. 밤과 가로등은 외로움과 생식본능 때문에 기나긴 정사를 나눈다. 그러나 아무리 길어도 영원에 비하면 순식간이 아니겠는가. 실제로는 짧고 덧없는 결합을 끝내고 개별적인 존재로 환원됨을 의미한다. 담배 연기는 허망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틈의 근원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종족,성(性), 빈부차이, 교육수준이나 지적 수준, 종교의 차이 등이 사람들 사이를 벌어지게 한다. 특히 현대로 접어들면서 물질적 재산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관계거리는 상상을 초월한다. 오늘날 이 가치를 넘어서는 힘을 발휘하는 가치가 희미해지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이다. 위 시에서 틈의 원인은 직접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틈이 새로운 침묵을 낳았을 뿐이다. 틈은 소통을 멀게하고 인간을 점점 외롭고 불행하게 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백남규 / 평론가·중앙신인문학상 평론부문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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