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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섬진강 메기 매운탕

[사진=중앙포토]

[사진=중앙포토]

“메기 한 마리를
청어들이 사는
물통에 넣어 두면”


많은 물고기 가운데 유독 보고 싶었던 메기. 이 물고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보지 못한 물고기들이 많지만 메기란 물고기는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궁금증이 많았다. 세계적인 역사가 토인비가 ‘메기와 청어 이야기’를 자주 했다는 얘기를 들은 후 메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번 서울에 체류 중 메기를 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메기 매운탕을 먹을 기회가 생겨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었다. 이 섬진강 식당은 서울 시내에 있는 것이 아니고 북한산을 지나 송추로 가는 길목인 양주시에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잘 아는 최혜빈 시인이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하였는데 추억에 남을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며 내가 묵은 호텔에서 한 시간 반이나 걸려 섬진강 식당으로 안내했다. 전재표 시인이 고맙게도 운전을 해 주셔서 먼 거리를 올 수 있어서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도착하니 시골에 있는 식당인데도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고객들로 붐볐다.

처음 먹어보는 메기 매운탕이라 맛이 어떨까 하고 잔뜩 기대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나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든 것은 미나리를 듬뿍 담은 큰 소쿠리였다. 미나리가 건강에 좋다는 얘기는 모두가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보던 미나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잎이 크고 푸르고 싱싱한데 놀랐고 고봉밥처럼 큰 소쿠리에다 가득 담아 내놓는 주인 마나님의 큰 손에 또 한 번 놀랐다. 저 많은 양을 세 사람이 어떻게 다 먹으라고 저리도 많이 주는가 싶었다. 이날 저녁은 미나리로 잔칫상을 벌이는 기분이었다.



매운탕이 계속 끓고 있는 동안 싱싱한 생미나리를 메기 위에 얹어 살짝 데쳐 먹는 맛이 별미였다. 생선 메기가 익을 동안 세 사람 모두가 미나리를 먹고 또 먹고 끝없이 먹으니 그 많던 미나리가 거의 바닥이 나 못 먹겠다고 했을 때 세 사람이 미나리에 취해 메기를 먹을 기력을 잃은 것 같았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그래도 맛은 봐야 하겠기에 세 사람이 맛있게 나누어 먹기로 했다. 메기 살이 어찌나 부드러운지 입 속에 넣자마자 솜사탕 녹듯이 스르르 입 천장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배가 불러 씩씩 소리를 내며 땀을 뻘뻘, 매운맛에 눈물을 질끈 짜며 세 사람이 서로 쳐다 보며 먹는 모습이 정말 가관이었다. 우리가 힘겹게 먹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눈여겨 보았다면 아마도 포복절도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급하게 선풍기를 달라고 외치자 주인 마나님이 재빨리 가져다주었다. 아 시원한 바람이 우리의 땀을 식히고 눈물을 말리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다시 살아난 기분이었다.

벌써 어둑어둑 밤이 오고 있었다. 전재표 시인이 여기까지 온 김에 1시간 거리에 있는 소호아트미술관에 들러 진열해 놓은 그림을 감상하고 가자고 제안을 했다. 언제 여기 또 올 수가 있을까 싶어 승낙하자 전재표 시인이 차를 몰고 미술관을 향해 운전했다.

소호아트미술관장이신 소호 김원준 화백이 우리를 위해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세계 최초 일필 추상화를 그리는 김원준 화백을 만날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 피카소 그림처럼 추상화라 문외한인 우리가 감상하기는 좀 어려웠으나 자꾸 보니 이해가 좀 되었는데 화가의 설명을 들으니 뚜렷이 알 수 있었다. 사진도 찍고 담소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낮에 방문했으면 뒤편에 수목원에도 안내하고 남이섬이 가까운데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두 부부는 아쉬움을 표했다. 초면에 말만 들어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메기 매운탕을 먹으러 왔다가 김원준 화백과 그림을 본 것은 덤으로 얻은 큰 축복이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동안 차 안에서 최혜빈 시인과 전재표 시인께 감사한 마음이 가슴 가득 채워졌다. 나에겐 잊히지 않는 추억거리로 내 남은 삶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으니 두 분 시인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었다. 나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에 감동하고 감사한 마음이 소용돌이쳤다.

또한, 토인비 박사가 생각났다.세계적인 역사가 토인비 박사가 즐기던 이야기가 ‘토인비의 메기와 청어 이야기’다. 그 내용인즉 영국의 어부들이 북쪽에서 청어를 잡아 런던에 도착하면 거의 모든 어부가 잡은 청어들은 다 죽고 말았는데, 유독 한 어부의 청어들은 싱싱하게 살아 있었다. 다른 어부들이 그 어부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가 대답하기를 ‘메기 한 마리를 청어들이 사는 물통에 넣어 두면 메기가 청어를 잡아먹으러 달려가면 청어들은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해 헤엄쳐 도망치고 이리저리 숨고 하는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라고 했다. 그야말로 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생존경쟁에서 질 수밖에 없었던 청어들이 살아남은 것은 기적에 가까운데 적자생존의 법칙을 뒤집은 놀라운 이야기다.

토인비의 이야기 중에 메기가 엄청 힘이 센 물고기인데 청어를 잡아먹지 못한 패자가 되었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반면 살아남은 청어들은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 살아남아 주인 어부에게 기쁨을 주고 모든 어부의 감탄을 자아낸 승리자가 된 것이다. 패자가 된 메기를 잡아 매운탕으로 먹은 인간은 더 큰 승자가 된 것이다. 우리 인간도 청어처럼 많은 고난을 받아야 더욱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세상 모든 악과 싸워 승자가 될 것이다.


김수영 / 수필가·미주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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