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동화] 이웃집 할머니의 그림

할머니께서 노환으로 돌아 가셨다고 한다. 이웃집 할머니다.

나는 기차를 탔다. 할머니께서 계신 타운은 바닷가에 있다. 기차를 타는 것이 차를 운전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 나는 차창에 기대 앉아 바다를 보고 있다.

기차는 앞으로 달리고 내 마음은 뒤로 간다. 내가 여섯 살 때였다. 머리를 감고 응접실 안을 뛰어 다니고 있었다. 긴 머리카락에서 물이 마루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네 살짜리 동생이 나를 쫓아뛰다가 넘어졌다. 할머니가 이층에서 내려와 날 야단쳤다. 나는 앙앙 울었다. 동생은 더 크게 울었다. 퇴근해 들어온 엄마가 얼굴이 왜 그렇게 부풀었냐고 물었다.

“할머니 때문이야. 할머니 미워. 마구 소리 지르고. 싫어 싫어!”



동생과 나는 할머니 핑계를 댔다.

엄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불렀다. 위층에서 두 분이 내려왔다.

“집이 너무 크니까 같이 살긴 하지만 오늘부터 두 분은 이웃집 사람입니다. 간섭하지 마세요. 내 딸은 내가 가르쳐요. 아셨죠? 여기는 아메리카입니다.”

내가 들어도 따끔한 말이었다. 그날부터 할머니는 잘 내려오지 않았다. 우리들은 자주 싸웠다. 아빠 엄마도 싸웠다. 이층을 올려다 보며 앙앙 울어도 할머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가끔씩 할아버지가 할머니 더러 우리들을 혼내 주라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하시구려, 나는 이웃집 할매요.”

대답하는 목소리는 차가웠다.

어느 날 할머니가 엄마한테 말했다.

“너는 내 딸이니 내가 내 딸을 가르치는 건 괜찮겠지? ”

“싫어요. 가르치지 마세요. 천천히 깨닫게 해주세요. 간섭 말아요.”

그러던 엄마가 할머니 손톱을 트집 잡았다.

“엄마 손톱 좀 지워요. 맨날 새빨간 손톱, 길고 보기 흉해요.”

“이것 봐 이웃집 아줌마, 난 예술가야. 손톱 칠은 내 자유지. 알았어?”

나는 낄낄낄 몰래 웃었다. 할머니는 점점 말이 없어지고 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이층이 궁금해서 올라가 보았다. 할머니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잘 안되는구나.”

“어떤 그림이 제일 아름다운가요? 나는 꽃이 예쁜데.”

“평화와 믿음과 사랑이 넘치는 그림인데 그것을 그릴 수가 없구나.”

나는 이웃집 할머니가 꼭 그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바다가 보이는 도시로 이사를 갔다.

나는 방학 때마다 할머니 집에서 살았다. 커다란 우리 집보다 할머니가 있는 작은 집이 좋았다. 대학생이 된 뒤에도 나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할머니에게 물어 보곤 했다.

“문제를 극복하려고 몸부림치지 말고 현명하게 견디려고 노력해봐. 곧 끝날 거야.”

엄마보다 차분하게 의논 상대가 되어 준 할머니가 좋았다.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은 적당한 거리에서 이웃집 할머니로 참고 기다려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형제는 또래 아이들보다 예의바르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할머니 덕분이다.

할머니를 장사 지내고 유품 정리를 했다. 귀중품이 들어 있다는 상자를 열었다.

그림 한 점이 나왔다. 내 어린 시절에 우리 가족과 할머니 할아버지가 웃고 있는 그림이다.

뒷면에 ‘믿음과 사랑과 평화’ 이웃집 할머니라고 적혀 있다.

나는 그림을 가슴에 안았다. 할머니 냄새, 웃음소리 그리고 빨간 손톱…. 좋았던 일들이

가슴에 물결쳤다. 기차를 타고 돌아 갈 때 더 많은 추억에 잠길 것이다.


김태영 / 동화작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