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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마일 대종주' PCT를 가다 ②] 나를 찾는 길, '한인 천사'들이 있다

[LA중앙일보] 발행 2018/08/23 미주판 4면 기사입력 2018/08/22 19:35

한인 3명 '트레일엔젤' 조직
3년전부터 하이커 지원나서
짐 운반하고 응급상황 지원

숨진 한인 하이커 장례 돕고
LA서 장봐서 삼겹살 파티도
"청춘들에게 보내는 응원"

PCT하이커와 엔젤들이 PCT데이즈가 열린 케스케이드록스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틀 동안 20대부터 50대까지 한인 하이커 20~30명이 이곳을 오갔다.

PCT하이커와 엔젤들이 PCT데이즈가 열린 케스케이드록스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틀 동안 20대부터 50대까지 한인 하이커 20~30명이 이곳을 오갔다.

한인 PCT엔젤 줄리엔 정(왼쪽)씨와 이주영(오른쪽)씨.

한인 PCT엔젤 줄리엔 정(왼쪽)씨와 이주영(오른쪽)씨.

미 서부를 종단하는 PCT(Pacific Crest Trail)에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일반 주민이나 하이킹 경험이 있는 주민들이 하이커들에게 숙박이나 음료 등을 무료로 제공해주는 것이다. 하이커들은 이를 'PCT 엔젤'이라 부른다. 남가주에는 한인 PCT 엔젤이 조용히 활동하고 있다. 한인 하이커들에게 트레일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중간 중간 무거운 짐을 받아 필요한 장소에 전달해 준다.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온라인으로 24시간 연결돼 응급상황에 도움을 주는 일이다. 기자는 이들과 함께 이틀간 PCT 엔젤이 됐다.

16일 오후 2시 30분. PCT 엔젤 이주영 대표가 대형 밴을 몰고 LA를 출발해 5번 하이웨이에 발을 올렸다. 목적지는 하이커 축제인 PCT데이즈가 열리는 케스케이드록스(포틀랜드 인근)다. 하이킹 3분의 2지점(2162마일)으로 이곳에서 한인 하이커들을 만나 집밥과 고기를 배불리 먹일 작정이다. 차로 꼬박 17시간을 달려야한다.

이주영 대표 등 3명의 트레일 엔젤들은 2015년부터 3년째 자비를 써가며 하이커들의 도우미를 자처해오고 있다. 이벤트 회사인 유비아이텍을 운영하는 이 대표는 올해 이문세 콘서트, 지난해에는 세계가전박람회(CES)에서 한국 대기업의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미 최고봉 위티어산 암벽을 오른 등반 애호가다.

"아이들이 타지에서 말도 안 통하고 얼마나 안타까워요. 최소한 응급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건강 상황을 확인하고 필요한 물품을 조달해 주고 있죠."

한국서 하이킹 준비를 단단히 해도 미 서부 사막을 맞닥뜨리면 상황이 달라진다.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대자연은 의욕만으로 덤빌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완주를 해야한다는 지나친 목적의식과 남보다 빨리 걷겠다는 한국인 특유의 강박관념은 위험한 발상이다.

이 대표는 "몇몇 하이커들은 기록을 재듯 빨리 종주하려고 하다가 변을 당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 샌디에이고 인근에서는 60대 한인 하이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근처에 있던 군 장교 출신 한인 하이커가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되돌릴 수 없었다.

사망한 하이커와 PCT데이즈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던 2015년 PCT 하이커 김희남씨도 이날 엔젤 밴을 타고 동행했다. 그는 사망한 하이커를 추모하기 위해 그의 트레일 별명이었던 'Happy Day'를 노란색 배지로 만들어 왔다. 희남씨는 "그분 다이어리에 물통에 '물이 새서 걱정'이라는 문구가 있었다고 가족들에게 전해들었다"며 "아마 젊은 하이커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 도움을 제때 청하지 못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한인 PCT 하이커들이 이주영씨의 개조한 차량 뒤에서 옹기종기 누워 자고 있다. 하이커들은 이 차량을 타고 걸음을 멈췄던 지역으로 되돌아가 하이킹을 다시 시작한다.

한인 PCT 하이커들이 이주영씨의 개조한 차량 뒤에서 옹기종기 누워 자고 있다. 하이커들은 이 차량을 타고 걸음을 멈췄던 지역으로 되돌아가 하이킹을 다시 시작한다.

당시 사후 조치는 LA에 거주하는 애나 이씨가 맡았다. 경찰과 통화하며 사태를 수습했고 LA에서 치른 장례식 때는 하이커 4명을 자신의 집에 재웠다. 이씨는 "영어가 미숙한 한인 하이커들은 응급상황에서 영어 통역을 부탁할 사람을 찾기 쉽지 않다"며 "먼길 걷는 청년들이 기특해 돕고 있다"고 말했다.

엔젤 밴은 아직 축제장에 도착하지 못한 한인 하이커들을 태워가며 목적지로 이동했다. 그들은 시골 마을 주유소 벤치, 숙박시설 출입문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시각은 출발한지 20시간이 지난 17일 오전 11시쯤.

바빠진 엔젤은 '식당언니'를 자처한 줄리엔 정 컬처앤소사이어티 대표다. 정 대표는 LA에서 장을 봐 온 삼겹살과 불고기를 굽고 집밥을 먹이기 위해 된장찌개와 부대찌개 등을 끓였다. 타인종 하이커들은 "이런 큰 도움을 그냥 받아도 되나"며 멋쩍어 하면서도 밥그릇을 싹싹 비웠다.

정 대표는 "청춘들에게 보내는 응원이다. 이민자들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라며 "이 친구들도 향후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PCT 엔젤들은 2박 3일 동안 하이커들과 건강, 고민, 어려움 등을 나눴다.

마지막 날 큰 형 이주영 대표는 청년들에게 당부했다.

"나도 젊었을 때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6개월 하이킹이 끝나면 아마 커다란 공허함이 오기도 해요. 그 사이 좋은 곳에 취업한 친구들의 소식도 들릴 수도 있죠. 지금까지는 걷고 버티는데 집중했다면 나머지 길은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해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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