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특별기고] 변증법과 한반도의 미래

이길주 / 버겐커뮤니티칼리지 역사학 교수

고교생 아들의 귀가 시간은 자꾸 늦어졌다. 매일 밤 10시쯤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아버지는 잡아 세웠다. "내일부터 너의 귀가 시간은 8시다. 다른 말 듣기 싫다." 아들은 반항한다. 자식이 부모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무례를 범한다. "무슨 권리로요?" 아버지는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새빨간 거짓말을 던진다. "싫으면 나가서 살아. 안 붙잡아. 고생 좀 해봐!" 말 그대로 집안에 전운이 돈다. 어머니가 다가와 귀가 시간을 정한다. 평일에는 8시, 주말에는 10시. 어머니가 아들에게 속삭였다. "늦어도 함부로 행동하지 마라. 그럼 귀가 시간은 싸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10시로 정해진다." 아들과 아버지는 굳은 악수를 한다. 아들이 사춘기 들어 의식적으로 피해왔던 일이다. 혁명적 변화다.

나는 이렇게 어머니에게서 변증법을 배웠다. 아버지는 권위를 지켰고 나는 자유를 지켰다. 집안은 이제 나의 귀가 시간문제로 시끄럽지 않았다. 고백하건대 어머니가 귀가 시간을 8시와 10시의 중간인 9시로 절충해 타협안을 내놓았다면 거부했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자유의 상징 '10시'를 포기하라는 요구였을 테니까. "다른 말 듣기 싫다!"고 먼저 선언했던 아버지도 체면을 구겼을 것이다.

타협(Compromise)과 변증법(Dialectics)은 다르다. 타협은 서로가 자신의 뜻을 일정 포기할 때만 가능하다. 변증은 서로 반(反)하는 양극의 충돌에서 생성되는 에너지를 이용해 기존의 갈등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 더 높은 차원으로 관계를 궤도 상승시키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존재해 온 갈등을 뿌리째 없애는 것이다.

현실화된 남북/북미 정상회담의 궁극적 목표는 북한의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핵 폐기"다. 이 목표는 타협으로 이룰 수 없다. 북한 정권에게 핵무기는 생명이다. 그것이 피해망상적의 병리 현상이고 마음이 돌아선 주민 이탈을 막기 위한 내부결속용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북한이 생명과도 같은 핵무기를 폐기하면 내줄 수 있는 반대급부는 무엇인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살기를 포기하면 생명을 보장해 준다는 약속으로 들린다. 생명은 어떤 상황에서도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핵무기=생명연장의 등식을 깨는 수밖에 없다. 변증법이 요구된다.

분단 후 지금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은 양립할 수 없는 극으로 존재해왔다. 남한은 '번영' 북은 '자주'를 존재 이유로 설정했다. 이 가치들을 지킨다며 한반도를 제로섬 게임의 격전장으로 만들었다. 이 대결장을 떠받들기 위해 비정상의 기둥들이 세워졌다. 북의 1인 영도 세습체제, 인권 부재, 경제 파탄 중의 핵무기 개발이 여기에 속한다. 식민역사의 청산 포기, 장기집권, 개발독재, 또 주권국가의 통제 밖에 있는 외국 군대의 주둔은 남한의 비정상 요소였다.

이 싸움터에 두 구호가 걸려있다. 남한에는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북한에는 "우리 식대로 살아 나가자!"가 있다. 이 구호를 외치며 분단과 대립관계를 공고히 했다. 그래서 '상호 배타적(mutually exclusive)' 관계에 있지 않아도 되는 가치들이 서로의 심장을 겨누는 총구가 되었다. "번영 대(對) 자주" "자유 대(對) 평등."

이 두 외침 사이에 타협점은 없었다. 이제 변증법을 통해 이 대결장을 벗어날 때가 왔다. 한반도에 새로운 존재 형태를 만들면 된다. "우리 식대로 잘 살아 보자!"다. 북한이 핵무기 없어도 "우리 식대로 잘 살아 갈 수 있다"는 확신을 하게 할 때 가능하다.

북한은 한민족 자주성의 확인으로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한다. 실현 불가능이다. 주한 미군은 고작 평양을 향한 바늘 끝이 아니다. 역사를 똑바로 봐야 한다. 미국은 19세기 중반에 'Manifest Destiny(명백한 사명)'란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했다. 미국의 가치를 땅끝까지 전파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생각이다. 땅끝은 바다 끝으로 확대되고, 종국에는 인류 전체를 포괄하는 사상으로 자리 잡는다.

그 후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Pax Americana'가 탄생한다. 미국이 있어 세계의 평화(Peace), 안녕(Well-Being), 진보(Progress)가 지켜진다는 신앙과도 같은 세계관이다. 주한미군은 '팍스 아메리카나'에 도전하는 세력과 집단을 행해 뽑아 든 칼끝이다. 중국의 부상을 인접국이며 과거 종속 관계였던 한국은 수용할 것이란 가정 아래 이 칼끝은 더 뾰족해졌다. 설상 미국이 인적자원과 무기를 줄이고 훈련을 연기 또는 축소하는 타협을 한다 해도 자주성의 확보는 아니다.

남북 정상 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실현 가능한, 평화적 자주성 확보의 변증법을 제시해야 한다. 핵을 버리면 더 잘 살게 해주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개방하면 10년 이내에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만들어주겠다는 정책) 또는 박근혜 정부의 실체도 없는 "통일은 대박" 따위의 타협안은 안 된다.

분단이란 비정상의 상황 덕분에 남과 북이 각자 생존과 직결시켜 더 열심히 생산하고 뿜어낸 '번영'과 '자주'를 위한 에너지에 의존해야 한다. 이 부스터를 통해 한민족 공동체를 궤도 상승시켜 "성숙한 나라(a mature nation)"를 만들어야 한다. 그 길을 찾아가는 남북, 북미 대화가 되어야 한다.

개인에게 성숙의 기본은 자기 앞가림하고, 형제를 아끼고,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고, 동네 일에 발 벗고 나서는 품성이다. 이런 인물에 대해서 외부 간섭은 불필요하다. 국가와 민족에게 성숙은 경제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갈등을 줄이며, 배타성이나 폭력에 의지하지 않고, 인류 공동체의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국격(國格)이 곧 성숙함이다. 평화 없이는 실현 불가능한 민족의 염원이다.

끝으로, 미국은 '성숙과 지속성 사회' 개념의 권위자인 경제학자 파타 다스굽타(Partha Dasgupta) 케임브리지대 명예교수의 제안을 새겨야 한다. 협력은 서로에 대한 신뢰(trust)만으로 부족하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규범과 기준 (norm)'의 '조정(coordinate)'이 필수다. 'Manifest Destiny'와 'Pax Americana'의 깃발을 들고 북미 대화에 나서지 않기 바란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