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동서교차로] 안 보이는 나라

어둠이 안개 속에 깔려 있다. 서울로 잠입할 생각을 한다. 잠입이라는 말이 맞다. 아무에게도 연락 안 했다. 이제 내 귀국을 눈여겨 보는 사람도 가슴에 손 얹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 아득한 옛날 귀향을 다짐하던 청춘의 독백도 세월 속에 흘러갔다. 낯선 도시를 헤매듯 익숙하지 않는 몸짓으로 서성이고 헤매인다.

인천공항은 깨끗하고 시설도 훌륭하다. 공항버스도 운행시간과 탑승과 하차 구간이 편리하게 잘 짜여있다. 두리번거리는 나는 촌뜨기 외국인으로 분류된다. 표정없는 사람들에게 길 묻기도 어려워 긴장으로 허둥대며 겨우 공항버스를 탔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하늘은 자주빛 물감을 쪽빛 팔레트에 풀기 시작한다. 짐 풀자마자 택시 타고 남대문 시장으로 달려갔다. 정갈한 반찬 네 가지에 갈치 다섯 토막 넉넉하게 넣은 맛난 정식이 팔천원이다. 뚝배기 계란찜은 서비스. 등이 반쯤 굽은 할머니는 흡입형으로 삼키는 내 모습에 감동해 정겹게 내일 또 오라하신다.

등 따습고 배 부르니 고향길에 살맛이 난다. 택시 운전사는 시대를 읽는 나침판, 역동하는 역사의 산 증인이고 정치 해설가다. 요즘 경기가 말이 아니지만 서민이 언제 한 번도 살기 좋은 적이 있었냐며 찌든 웃음 짓는다. 당하고 무너져 바닥을 헤매도 자갈처럼 흙에 묻혀 지반의 무게를 견디는 사람은 서민들이다.



세계 청년 리더들의 축제인 '2018 글로벌 청년 페스티벌' 오프닝행사에 참석했다. 난생 처음 KTX를 탔다. 아나운서처럼 내 얼굴도 안 쳐다보고 표 파는 안내원이 설명을 안해 줘 신경주역 대신 부산으로 갈 뻔 했다. 짐짝 만한 가방들고 20개가 넘는 계단을 여자 혼자 끙끙대며 내려가는데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내 나라. 힘든 표정만 지어도 도와주던 남자들이 새삼 떠오른다. 미국은 장애인, 어린이, 여자 그리고 견공, 남자가 제일 꼬랑지 신세라는 선배 말이 생각난다. 시설과 편리함이 세계적인 도시의 시민정신은 속수무책이라는 생각을 한다. 화랑의 늠름함과 올곧은 선비 정신은 어디로 갔나.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의 세속오계 정신은 신라가 삼국 통일을 성취한 뒤 강대국 당나라를 몰아내고 자주국으로 천년 왕조의 영광을 누리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선비의 올곧은 정신, 화랑도의 진취성, 신바람 나는 서민의 열정과 흥, 소통과 조화를 아루는 성숙한 어울림이 건강한 정신 아름다운 혼(魂)으로 성숙한 시민정신을 만는다.

경주는 지진여파와 관광객 감소로 큰 위기에 처해있다. 농민들은 다 지은 농사를 훔쳐갈 도둑 걱정에 잠을 설친다. 쌀값이 폭등하면 쌀 도둑들이 판을 친다고 한다. 논 열마지기 걷어가는데 2시간 밖에 안 걸린다니 말만 들어도 간장이 서늘하다. 나는 내 나라의 진짜 모습을 모른다. 하루 평균 36명이 목숨을 끓는 자살률 1위의 자살공화국, 출산율이 OECD 국가 중 제일 낮은 나라, 풍요롭고 화려한 장막 뒤에 숨은 찌들고 슬픈 얼굴들을 본다. 밖에 있으면 안이 잘 보인다. 어항 속 물고기는 제 모습을 볼 수 없다. 시대불감증과 시민정신의 부재, 언론 통제과 일회성 정책으로 조국의 참 모습은 볼 수 없다. 볼 수 없으니 알 수 없고 알 길이 없으니 치유와 해결책은 더욱 불가능하다. 안에서 안 보이는 조국의 모습을 바라보는 내 눈은 슬프다. 친정 먹여 살릴 도리는 없다해도 내 핏줄 내 동무와 함께 걸었던 복사꽃 피는 언덕은 부모님과 형제들이 사는 늘 그리운 내 고향이다.


이기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