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뉴욕의 맛과 멋] 다람쥐의 겨우살이 준비

얼마전, 뒷마당에 앉아 있는데, 샤르르-샤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소나무에서 솔잎 아닌 잎사귀처럼 생긴 갈색잎들이 한꺼번에 무더기로 떨어졌다. 다람쥐들이 겨우살이 먹이로 솔방울을 먹으므로 그 껍질을 벗겨낸 것이라는 설명을 나중에 들었다. 그 많은 걸 나무 어디에 숨겨 놓았다가 한꺼번에 처치(?)하는 건지 내 머리론 상상이 안 된다.

그 참 희한하네! 신기하게 여기며 도대체 얘네들은 어디다 양식을 저장하지? 몹시 궁금했다. 둘째사위는 자기가 살고 있는 뒷채 벽과 나무 사이의 공간에 있을 거라고 단언했다. 자기가 일하는 동안 다람쥐들이 지붕을 부지런히 오갔고, 벽에서도 그런 소요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누구도 그런 상황이 펼쳐지는 곳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어서 상상만 요란했지 실체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 비밀창고를 내가 발견했다. 옆마당의 잡초가 무성해서 깎던 날이었다. 세상에나! 잡초가 우거졌던 나무 게이트 양쪽에 작은 산처럼 쌓인 솔방울 집합처가 나타난 것이다. 햇볕이 드는 쪽엔 게이트 양쪽으로, 응달쪽은 둥그렇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쪽은 체리나무가 있어서 일부러 들춰보지 않으면 눈길이 닿지 않는다. 다람쥐들이 겨우살이 준비하는 동안 마당이 얼마나 소란했는지 모른다. 나무를 오르내리고, 울타리 위를 달리고, 게이트와 지붕을 오가며 온종일 시끄러웠다.

며칠 간격으로 첫째, 둘째네가 뉴욕으로 돌아갔다. 코로나 덕분(?)에 예기치 않게 딸들과 함께 몇 달 동안 한 울타리 안에서 꿈같은 시간을 보낸 나의 행복 1막도 더불어 막을 내렸다. 아마도 두 딸 가족과 함께 지낸 지난 몇 달은 내 생애에 전무후무한 역사적 추억이 될 성 싶다. 딸들 덕에 맛있고 영양가 있는 식사로 하루 세 끼를 꼬박 챙길 수 있었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뛰는 두 딸 덕에 덩달아 나도 한 시간씩 걸었다. 철없는 블루는 자기가 돌아오면 할머니와 무엇을 할 것인지 얼마나 많은 계획을 세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떠나기 사흘 전에 온 첫눈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버리지 말라’는 노트를 붙여서 소중하게 냉동실에 넣고는 자기 올 때까지 잘 보관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떠났다.



코로나는 많은 사람들의 생존에 엄청난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새로운 삶의 진로를 찾기 위해 고심한다. 나 역시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이 투명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삶 자체가 늘 도전과 모험의 연속이었고, 살아있는 한 우리의 도전과 모험은 계속될 것이니 말이다. 아일랜드 켈트족의 기도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당신 손에 언제나 할 일이 있기를/ 당신 발 앞에 언제나 길이 나타나기를/ 바람은 언제나 당신의 등 뒤에서 불고/ 당신의 얼굴에는 해가 비치기를/ 이따금 당신의 길에 비가 내리더라도/ 곧 무지개가 뜨기를/ 불행에서는 가난하고/ 축복에서는 부자가 되기를…’ 비록 지금은 모든 게 불확실한 시간이라 해도 내 손에 할 일이 있고, 발 앞에 길이 나타난다면 두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다람쥐가 내 야생화 화단에 구멍을 파고 솔방울을 묻어놨길래 파버리고 솔방울도 치웠더니 다음 날 또다시 다람쥐들이 그 먹이창고를 복원해 놨다. 다시 파버릴까 하다가 다람쥐도 먹어야 살지, 싶어서 보존해 두었다.


이영주 / 수필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