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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문화주의 심판대에 올랐다'

[밴쿠버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0/10/15 09:23

[인사이드 캐나다]
백인들 "어디까지 받아 줘야 하나"

1-800-ACCOMMODATION, 퀘벡 주정부가 신설한 복합문화주의 관련 상담 전화다.

‘중국계 직원들이 그들의 설을 쉬게 해 달란다. 이들에게 유급휴가를 줘야 하나’, ‘일부 비기독교인 부모들이 탁아소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장식을 못마땅히 여긴다.
그들 때문에 장식을 떼야 하나’ 등 잇따른 문의가 이 번호로 접수됐다. 그간 벌어진 일들의 전개로 볼 때 정부의 답변을 바라는 단순한 질문들이 아니다.

올 초 한 이슬람교도 여성이 얼굴 가리개(니캅)를 벗지 않는다고 학교에서 퇴학 당하자 인종차별로 정부를 고소했다.

정부는 반 니캅 법안 상정으로 응수, 학교, 병원, 그 밖의 정부 시설에서 가리개 착용시 서비스 이용을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온타리오주에서는 집안에서 정한 혼처를 무시하고 남자친구를 사귄 여성이 시크교도 아버지와 오빠에 의해 살해됐다. 집안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명예회복 살인’이다.

이들이 일급살인 혐의로 기소되자 캐나다 형법보다는 자신의 종교법이 우선이라며 종교재판에 세워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백인들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복합문화주의 상담 전화에 남겨진 질의들은 어쩌면 ‘어디까지 참고 받아줘야 하나’라는 백인들의 항변이기도 하다.

최근 이들의 볼멘 목소리가 일부 우파 정치인을 넘어서 국민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40여년간 캐나다 국가 통치이념으로 자리잡아온 복합문화주의가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유력 전국지 글로브앤메일은 지난주 사설을 통해 “복합문화주의는 유색인종들이 춤과 음식을 선보이는 축제 이상의 의미를 잃었다”면서 “폐기 처분해야 할 때”라고 못박았다.

이 같은 ‘선언’ 이면에는 최근 잇따른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고취된 백인들의 위기감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백인이 밴쿠버와 토론토에서 소수민족으로 전락할 것이란 연방 통계청 보고가 나왔다.

매년 25만명이 유입되는 현 수준을 유지한다면 20년 안에 해외 출신 이민자가 캐나다 전체 인구 30%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 후손까지 친다면 인구의 과반수 이상이 이민자와 그 가족으로 채워진다는 계산이다. 4백년 동안 캐나다를 움직인 백인들이 그 주류의 자리를 내놓아야 할 판이다.

올해 들어 풀린다는 경기는 ‘더블 딥’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으로 악화됐다.

이에 따라 이민자와 외국인 근로자가 일자리를 뺏는 주범에 또 다시 올랐다. 그 와중에 태평양을 건너 타밀족 집단 난민선이 빅토리아항에 와 닿았다.

2차, 3차 기획 난민선이 캐나다를 향해 꾸려지고 있다는 보도와 함께 국경이 무너져 내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연일 헤드라인에 올랐다.

직격탄은 최근 캐나다의 심장부 토론토에서 터졌다. 평판 좋았던 현직 종합병원 전문의와 팝스타를 꿈꾸던 한 젊은이가 폭탄 테러를 감행하다 일망타진된 사건이다.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민 2세가 캐나다를 향해 총 뿌리를 겨누었다는 사실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캐나다에 융화될 것이라는 백인들이 지녔던 이민자 상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았다.

영어구사가 완벽하고 의사, 연예인이란 선망 직종을 함께 추구하던 보통 젊은이가 그 속에 캐나다 테러의 씨앗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도대체 알 수 없는 게 유색인종 이민자’라는 이민자 공포증을 불러 일으켰다.

일부 학자와 정치인들은 과격 이슬람교도에 국한 된 소행이라고 애써 국민들을 진정시키려 하지만 다른 한 켠에선 실패한 복합문화주의가 낳은 결과물로 보고 있다.

이들을 대변하는 한 학자는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바탕 위에 사회 통합을 추구한다라는 애당초 취지와는 달리 ‘다름’만이 강조돼 왔다”면서 “그 방패막이 아래서 이질적 종교와 가치가 난무하도록 허용한 나머지 수용한계선을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기독교 문화에 뿌리는 둔 사회통념과 가치가 혼탁해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백인들의 고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도 있다. 다르다는 것을 내세우는 데 치우친 결과가 인종간의 고립을 가져왔다고 보는 견해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인종간의 소통이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경험적 사실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현재 과반수에 가까운 인구를 15개국 출신들이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인종간의 고립은 곧 사회분열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킨다.

복합문화주의가 목표로 하는 국가통합에 정반대 결과다. 일부에선 ‘뜨내기’ 이민자가 현 사태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글로브앤메일 지상 토론에 참가한 한 전문가는 “국가 존속을 위한 지속적인 시민 양산이 이민자 수용의 궁극적 목표인데 여차하면 돌아갈 뜨내기 이민자를 아무리 받아들인 들 캐나다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비판적 시각은 현 이민 정책에 일차적인 책임을 묻고 있다.

투자 유치와 부족한 직종의 전문인력 수급에 초점을 둔 이민정책으로써는 부유국 출신이나 고학력 이민자들을 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이런 이민자들일수록 캐나다를 내 나라로 받아들일 경향이 희박하다는 인식에서다.

단기적 필요를 충족시킬 ‘맞춤형’ 이민자보다는 기회에 목말라하는 후진국 젊은이들을 대거 받는 편이 장래성이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실질적인 측면에서도 현재 들어오는 고학력 전문직 이민자는 캐나다 사회에 큰 보탬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컨퍼런스 보드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민자들의 능력과 사회경험을 살리지 못해 잃는 생산성을 액수로 환산하면 연간 50억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최근 창설된 시민단체 ‘이민정책 혁신센터’는 한발 더 나아가 “현 이민자들은 내는 세금보다 정부 보조금을 수십억 달러 더 받아 챙기고 있다”며 “사회적 보탬은커녕 짐스런 존재가 되고 있다”고 힐난했다.

그러나 일부 백인들 사이에선 모든 책임을 이민자들에게만 떠 넘길 수는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일고 있다.

의사 엔지니어 등 고학력 전문직 이민자를 받아 놓고도 그 자격인증을 소홀히 해 박사학위 소지자가 택시를 모는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것은 정부와 전문직 협회 탓이라는 주장이 한 사례다.

또 ‘캐나다에서의 경험’을 고집하는 기업들의 고용풍토가 이민자들의 취업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라는 인식에 동의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한편, 이질적 집단의 유입은 이민자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캐나다의 운명이라는 현실론도 대두된다.

현 이민자 유입수는 인구 고령화를 막고 노동인구의 꾸준한 양산을 위해 매년 최소한 받아들여야 하는 전체인구의 1%에도 못 미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새로운 사회통합의 가치를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를 위해선 기독교적 가치를 일부 포기할 수 있는 열린 사고를 백인 주류사회에 요구하고 있다.

이주형 기자
밴쿠버 중앙일보 www.joongang.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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