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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자녀양육 3>명문대 못가서 다행

김종환 교수/달라스침례신학대학교 기독교 교육학과

우연히 EBS 다큐멘터리 ‘공부의 배신’ 1부를 봤다. 흙수저 아이들이 명문대 진학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담아낸 것이었다. 처음에는 한국 중고등학생들이 입시지옥에서 살고 있다는 내용이겠거니 하고 지나치려고 했었다. 그런 내용의 보도는 이미 수없이 봐왔으니까. 그런데 흙수저 아이들 속에서 내 모습을 보고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서 끝까지 보게됐다.

금수저, 은수저 아이들과 출발점도 다르고 엔진도 다른 흜수저 아이들이 명무대에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게 심지어 처절해 보이기까지 했다.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아끼며 공부하는 아이, 쉬려고 앉으면 못 일어날까봐 두려워하는 아이, 마음이 산만해질까봐 집에서도 교복을 입고 공부하는 아이를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안타까웠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또래 아이들을 모두 경쟁자로 여기며 사는 아이들이 너무 불쌍했다.

명문대가 신분상승을 가져다 줄 거라는 기대 때문에, 명문대 못 가면 낙오자가 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흙수저 아이들은 오로지 명문대라는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 나이 때, 나도 그랬었다. 부모님처럼 고달프게 몸으로 일하는 삶을 벗어나려면, 집 한 칸 없는 삶을 벗어나려면, 명문대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집과 교회와 학교에만 갇혀 살았다. 덕분에 팝송도 못 듣고, 기타도 못 배웠다.

대학 입학시험을 망쳤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명문대 진학의 꿈이 좌절됐다. 부모님의 기대를 무참하게 무너뜨렸다. 실망하고 낙심한 아버지가 깡소주를 들이키며 구부러진 어깨를 들썩이는 뒷모습을 볼 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던 그때 그 심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명문대 들어갈 것을 철석같이 믿었던 부모님 곁에서, 명문대에 입학한 친구들 가까이에서 재수를 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결국 전기대 시험을 다시 볼 생각으로 재수하는 샘치고 후기 지방대에 입학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영어를 공부했다. 강의실, 도서관, 하숙집에서 영어공부를 했다. 길을 걸을 때도 버스를 탈 때도 영어공부를 했다. 학기 중에도 방학 때도 영어공부를 했다. 그렇게 한 해를 마칠 때 쯤 됐을 때, 내가 그곳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그곳으로 가게 한 분이 하나님이라면, 명문대 진학을 다시 시도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해보기로 결정하고 단기계획과 장기계획을 세우고,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해달라고, 하나님의 뜻을 보여달라고 기도했다. 그후로 하나님의 자상하고 구체적인 인도하심을 경험했다. 내 능력과 부모님의 도움만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들이 이루어졌다. 장단기 계획이 하나도 차질 없이 달성되었다. 지금 후견지명(?)의 눈으로 돌이켜보면, 후기 지방대가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이 확실하다.

하나님의 뜻을 확인해보기로 결정한지 2년 후인 4학년 때, 그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미국 학교의 교환학생으로 왔다. 열심히 접시 닦고 청소하며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후 한국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고등교육기관에서 일하게 된지가 어느덧 22년이 됐다.

한국에서 명문대에 입학했더라면 지금쯤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물론 부질없는 생각이다. 그러나 잘나가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나 명퇴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또는 일이 잘 안풀리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여러가지 가능성을 상상해본다. 그때마다 내가 계획했던 것 이상의 목표를 달성한 것 같고, 명문대가 보장해줄 수 있었던 것 이상의 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마음 속 깊이 확인하고 하나님께 감사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명문대를 못 간 것이 다행이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에서 본 한국의 흙수저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명문대 못 가도 괜찮다고. 그 부모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명문대 안 보내도 괜찮다고.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한인 학생들과 부모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명문대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환경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이고, 학교보다 중요한 것이 학생이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맞는 말이지만, 먼저 그 환경을 만든 것이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환경을 바꿀 수도 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맞다. 한국에서 자식들을 명문대 보내려고 애쓰던 부모들이 미국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좋은 학군을 찾아 부동산 값을 올리고, 명문대 순방을 위해 앞을 다투는 모습들 종종 보고 듣는다. 자식 잘 되기를 바라서 자기 돈 쓰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어떤 학교에 가느냐 보다 어떤 학생이 되느냐가 더 중요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명문대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훌륭한 학생이 되면, 명문가를 만들고 학교를 빛내고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다.

미래를 생각하는 현명한 이민자들과 그 자녀들을 위해 두 가지만 제안하고 싶다: 첫째,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그것을 잘 하도록 노력하라. 둘째, 어떤 사람들을 돕고싶은지 생각해보고, 그들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한 능력을 개발하라.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을 잘 하면, 그것이 윤택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한다. 검판사, 의사, 엔지니어가 아니어도,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행복하고 윤택하게 살 수 있다.

아이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좋아하는 것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헷갈려서, 진로를 결정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남들을 생각해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주변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모두를 도울 수는 없으니 자기가 돕고싶은 대상을 정하고, 그들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생각해보면, 진로를 결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 돕기 위해 일하면,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사는 사람들 중에 굶주리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물론 첫번째 제안과 두번째 제안이 일치하면 그것보다 바람직한 일을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 남을 위하는 일이고 남을 위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진로는 이미 결정됐다. 그러나 본인이나 자녀의 진로결정 때문에 고민하는 이민자가 있다면, 위의 제안을 차례대로 숙고해보기를 권한다. 명문대가 아니어도 괜찮다.

필자소개: 김종환 교수는 1999년부터 2010년까지 사우스웨스턴 신학대학교 교수를 역임했고 1994년부터 1999년까지 DBU에서 사역했으며 현재 DBU신학대학(College of Christian Faith) 부학장이자 기독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이다. 뉴송교회 협동목사이며 미국생활 32년차 된 김종환 교수는 던컨빌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아내와 고등학교 음악선생인 아들, 대학교 졸업반인 딸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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