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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영어가 사람 잡네

나는 영어를 못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당당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하게는 말할 수 있다. 나는 노 잉글리시 피풀이다.

40년 넘게 미국에 살면서 영어를 못하니 베리베리 창피하기는 하지만 엄연한 팩트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동안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많았지만 요리조리 피하면서 살아왔다. 영어 없이도 늠름하게 살 수 있는 동네에서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핑계는 엄청날 정도로 많다. 대표적인 것이 영어 앨러지다. 나는 영어를 만나면 혓바닥에 쥐가 나고, 얼굴 근육이 씰룩거리고, 숨을 쉬기 어려워지는 고약한 앨러지가 있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 영어를 피하며 살았다. 의사에게 가봤지만 별다른 처방 없이, 되도록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정기적으로 유산소 운동을 적당하게 하고 잠을 잘 자라는 말만 들었다. 진찰비는 안 내도 된다기에 공손히 인사를 하고 나왔다. 생큐우!



그밖에도 핑계는 넘쳐날 지경으로 많다. 한글로 글을 써서 간신히 먹고 사는 직업을 가졌던 탓에 영어를 공부할 여유가 없었다. 세종대왕님에 대한 사무치는 존경심이 나로 하여금 영어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하여 배달민족의 정기를 당당하게 지켰다. 영어 한 마디 쓰지 않고도 별 불편 없이 씩씩하게 살 수 있는 코리아타운이 나의 영어공부를 가로막았다. 캘리포니아 주의회도 정식으로 한글날을 선포하지 않았느냐. 엉터리 영어 하다가 실수해서 망신당하느니 차라리 벙어리 노릇이 안전하다. 말없이 빙긋이 웃으면 중간은 간다. 정 급하면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된다. 우리 아이들은 효심이 지극해서 어지간하면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다. 뭐 이런 식의 핑계들이다.

그래서 구제불능의 노 잉글리시 피풀이 되었는데 지금은 후회막심이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소용없는 일이지만 베리베리 후회하고 반성한다. 아무리 핑계가 많고 그럴 듯하다 해도 후회를 덮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나는 영어 잘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을 당연히 존경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수다마저 존경하여 마지않는다. 구걸하는 거지의 유창한 영어에 감탄하여 흔쾌히 헌금한 적도 있다.

이제부터라도 영어공부를 할 생각이다. 본격적 공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지금은 철저한 자기반성을 거듭하는 중이다. 생각해보면 참 한심하다. 지난 40년간 매일 영어 단어 한 개씩만 외우고, 문장 한 구절씩만 익혔으면… 노벨노력상 근처에는 가고도 남았을 텐데….

이제 머지않아 자동번역기가 나올 모양인데 그 시간에 시라도 한 수 더 쓰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 따위의 유혹은 한 방에 박살내 버리고 후회와 반성에 몰입하고 있다. 한 개 외우고 돌아서면 두 개 까먹을 텐데 잘 될까요… 따위의 회의와 부정적 생각도 과감하게 쓰레기통에 버리고 단단히 각오를 다지고 있다. 나는 영어를 사랑한다! 나는 영어 앨러지 같은 것을 모른다! 뼈를 깎는 후회와 반성이 끝나는 대로 나도 영어공부에 일로매진할 것이다. 영어야, 기다려라, 내가 간다!!

아염 아 보이! 디스 이스 북! 오 노, 아염 낫 북(北), 아염 싸우쓰! 유노 싸우쓰?

아염 낫 노 잉글리시 피푸르!

아이 라브 유! 미투! (미투라구? 이번엔 또 누구여?)

아, 영어가 사람 잡네! 헤르푸 미!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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